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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벌써 40년 가까이 되어 간다, 내가 처음 엄마 따라 시장에 가기 시작한 것이. 업혀다닐 때에 덤으로 간 거지만, 두 발로 걷고 뛰면서 리어카 뒤를 따라 장에 간 것이 그렇다.

그때, 엄마가 궤짝 사과를 한 리어카 실어 놓고 나를 부르면, 나는 뒤에서 밀거나 당기며 장엘 갔다. 싸전을 지나고 고추전을 지나, 다시 옹기전을 지나면 끝에 사과전이 있었다. 거기에 2000년부터 충주장이 선다.

내게는 딴 생각이 있었다. 이것저것 볼 것들 보다는, 시장통 끝 다리위에서 노릇노릇 구워내는 풀빵이 우선 속셈이었다. 사과를 팔고 나면 꼭 들러 먹던 그 풀빵집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가던 길을 되돌아 집에 오는 중간에 '영춘식당'이라는 짜장면집이 있었다. 그게 두 번째 속셈이었다. 그렇게 따라다니며 먹는 재미를 붙였던 장날은 추억이 되었고, 엄마 나이 즈음 된 지금, 가끔 장날이면 장구경을 간다.

우수(雨水)가 지나고 비가 오며 날이 풀리는 듯하던 지난 장날, 봄구경을 나섰다. 파장 무렵이라 사람물결은 잦아들었다. 하나 둘 좌판을 정리하는 축이 있고, 아직도 바닥에 앉아 봄을 담는 주름 많은 아낙의 손이 느릿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어딘가에서 캐온 나생이, 달롱이 봄을 담아 팔리고 있었다. 흥정아닌 흥정, 한 옴큼만 있으면 된다고 눈대중으로 구슬러 겨우 필요한 만큼을 샀다. 덤이라며 조금 더 준다.

한바퀴 둘러보았다. 예전 철물점은 빵집으로 제법 자리잡은 것 같고, 시장통 문구 도매점은 대형 매장을 차려 빠져나간 지 한참이다. 교복 장사를 하는 친구 가게에 들렀다. "한창 때라 바쁘지·" 수인사에, "교복 장사 시작한 게 14년 짼데, 그때는 중고등학교 신입생이 기본 6천명, 그런데 올해는 3천명이야."라는 친구의 하소연에는 한숨도 묻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파장인데 "떨이떨이, 싸요싸요, 골라골라" 멀리서도 들리던 여리꾼들의 여리잡이가 없어진 것도 한참 된 것 같다. 유행처럼 놓여졌던 DJ박스도 작년 가을을 끝으로 반선재(潘善齋) 옆 귀퉁이로 옮겨졌다.

반선재 근방은 보통 '부민약국 삼거리'라 불리는 곳이 있다. 거기 1930년대 잠시 충주에 살던 한운사(韓雲史, 방송작가, 괴산 청안 출생, 1923~2009) 선생이 첫 도둑뽀뽀에 홍당무가 되어 탄금대로 내달리다 숨돌릴 때 까삭까삭 까삭대던 까치에게도 놀림받았었다는 방앗간집이 있던 곳이다. 그냥 보아서는 모를 다리는 보통 '대수정다리'라 불렀던 곳으로,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독갑교(獨甲橋)'라 해서 '도깨비다리'라 불리던 곳이었다. 이곳을 기준으로 남쪽은 젊고, 북쪽은 늙었다.

들어가 보면 분명한 차이를 간판에서 느낄 수 있다. 남쪽의 성서동 지역은 다섯 개 건너 하나 정도 읽을 수 있을까 말까 싶을 정도로 영어간판이 대종이고, 반대편 충인, 충의동 시장통에는 어느 동네 이름에 애 이름까지 여러 의미를 담아 짓느라 애썼을 간판들이 보통이다.

하지만, '투가리'는 '뚝배기'가 되었고, '밀국수'는 '칼국수'로, '올뱅이'는 '올갱이'로, '탁배기'는 '막걸리'로 표준화되어 말맛이 좀 떨어진다.

싸전, 고추전, 옹기전 등으로 부르던 골목골목 구역들은 어린 기억을 더듬어도 어눌하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며 재래시장 활성화 시책으로 씌워진 아케이드 덕분에 비가 와도 끄떡없다. 그저 늙어가는 시장통을 걸으며 이래저래 기억을 더듬었지만, 몇 곳을 빼놓고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40년된 주상복합아파트 시범 건물이 덩그마니 있다. 정책을 쫓아, 정책을 따라 세월을 보낸 시장은 오늘도 곳곳에 시장활성화 정책사업 선정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장에 가보라' 했던가· 문화가 있고, 삶이 있는 현장에서 보고 느끼며 이해해 보라는 뜻으로 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리꾼의 여리잡이에 목청껏 서로 경쟁하던 옛 모습, 활기는 떨어졌지만, 그만큼 이웃들의 발길이 멀어진 것이 쓸쓸함의 이유가 아닐까. 마트 계란 한판 만원을 이야기하는 요즘, 시장 계란 한판은 6, 7천원대다.

장구경에, 덤으로 봄구경, 사람구경, 세상구경하러, 거기 봄이 있으니 시장에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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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