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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성 - 뜨거운 피

암투·회유·배신… 짙은 페이소스 스민 인생의 격랑
1993년 마흔 살 건달의 짠내 나는 인생 이야기
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렬한 날들의 기록
주인공의 정서적 절망감 흡인력 있게 담아내

  • 웹출고시간2017.02.21 09:11:27
  • 최종수정2017.04.18 13:03:40

책과 지성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596쪽 / 1만6천500원

[충북일보] '나는 가끔 그 미로 같은 골목과 위태로울 정도로 얇은 벽들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진공관처럼 그 얇은 벽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수군거림은 신비롭고 은밀하며 긴장감 넘치고 심지어 굉장히 성적이기까지 했었다. 그 수군거림이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모든 집들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았다(실제로 대부분의 문들이 열려 있었다). 하여 이 동네에선 비밀이 숨을 곳이 없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았다. 누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누구를 증오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간절히 사랑하는지 모두들 알았다.(…)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소설에 등장하는 구암의 풍광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은 작가가 소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재탄생시킨 이야기다.

전과 4범의 마흔 살 희수는 부산 변두리 구암 깡패들의 중간 간부로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다. 구암 암흑가의 보스인 손영감의 오른팔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이 엄마와 아이들만 모여 사는 모자원에서 자랐다. 침착하고 사려 깊으며 다소 시니컬하지만, 아미와 인숙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숨기지 못한다.

희수는 부하들 몰래 우울증 약을 먹으며 호텔방에서 '달방'을 산다. 희수의 현주소다.

희수는 20년간 모신 보스 손영감을 떠나 새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 사랑해온 여자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잠시나마 가족을 꾸리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

작가는 적지 않은 분량을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내 메워지지 않을 동공 하나를 독자들의 마음에 남긴다.

삼류 건달들과 사창가 여인들, 황홀한 쇼윈도 불빛, 피와 눈물과 흐느낌 등 온갖 직설적인 것들로 가득했던 그 거리를 작가는 좋아했다고 말한다.

폭력조직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미뤄볼 수 있듯 거대 세력 간 충돌과 음모 앞에 개인의 삶과 신념은 이용당하고 희생되기 마련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기 일신의 안위를 살피고, 눈앞의 이익을 좇으며 암투와 회유, 배신으로 일희일비한다.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격랑은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갈등과 첨예한 권력 싸움에 휘말렸음에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꾸려나가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던져서다.

즉흥적이고 속물적인 방식으로라도 자신이 바라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으로 슬프고 씁쓸한 우리네 인생과 마주해 있다.

/ 유소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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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