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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2.13 16:48:40
  • 최종수정2016.12.13 16:48:40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땅이름 가운데 인문지명은 설화나 전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충북 진천군 일대에는 원나라 황후에 관련된 전설이 많이 구전되고 있다.

다만, 구전을 여러 번 거친 탓인지 정형화된 것은 없고 이월면 노원리의 궁골 전설, 역시 이월면 노원리의 원황후 궁터 전설, 덕산면 구만리의 구만리 설화 등 3종류의 전설이 혼재하고 있다.

『이야기 충북』(2004)에 수록된 궁골 전설은 원나라 세조(世祖) 홀필렬(忽必烈·쿠빌라이칸)이 황후감을 진천 이월면 노원리에서 찾았고, 그 기쁨으로 기황후(奇皇后·?~?)가 탄생한 그곳에 황후의 부모를 위해 궁궐을 세웠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궁골' 위치도

<디지털 진천문화대전>에 실려 있는 원황후 궁터 전설은 『조선환여승람』(1910∼1937) 진천군 고적조를 인용. 이월면 노원리 산 23-1 일대가 원나라 황후 오씨가 자신의 부모를 위해 궁골에 지어준 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진천의 구비문학'(2004)에 수록된 구만리 설화는 원나라 세조가 배후자를 찾던 끝에 진천 덕산면에서 기씨 처녀를 만났고, 날이 어두워 9마리의 말과 함께 구만리에 머물렀기 때문에 '구만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내용이다.

3개의 전설은 각각 원나라x기황후x노원리, 원나라x오황후x노원리, 원나라x기씨처녀x구만리 등의 조합을 지니고 있다. 원나라가 공통적으로 거론되고, 기씨 성을 지닌 여성이 그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다.

기씨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원나라 하면 기황후의 출세담이 많이 연상되고. 이것이 전설에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고려후기 권문세족 기철(奇轍·?~1356)의 여동생인 기황후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역사문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사』 열전과 『동국통감』 모두 기철 남매는 경기도 행주(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사람이라고 기술하였다.

고려~조선시대에 충북 진천(鎭川) 출신의 여성이면서 같은 시기 중국 왕조의 황후(皇后)가 된 인물은 우군사정(右軍司正) 오척(吳倜)의 딸이 유일하다.

『성호사설』(이익),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해동역사』(한치윤). 『청정관전서』(이덕무) 등은 모두 '진천출신 오척의 딸이 선덕제(宣德帝, 명 선종)의 후궁이면서 경태제(명 대종)의 생모(生母)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익의 『성호사설』이 吳공녀와 관련된 내용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여자로 중국에 들어가 존귀하게 된 자는 원 순제(元順帝)의 황후 기씨(奇氏)와 명 태종(明太宗)의 비(妃) 권씨(權氏)ㆍ한씨(韓氏)같은 이들인데, 이들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거니와 명 선종(明宣宗)의 황후 오씨(吳氏) 같은 이는 알고 있는 자가 적은데 오씨는 바로 진천(鎭川) 사람이다.'-<성호사설>

이어지는 내용은 '『고사촬요』를 살펴보면, "선덕 2년에 우군사정 오척(吳倜)의 딸 등 일곱 사람을 뽑아 사행(使行)에 딸려 보내 진상하였다." 하였는데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처음에는 후궁이 되어 경태(景泰)를 낳았는데 뒤에 경태가 높여서 태후를 삼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태후가 본국을 그리다 못해 자기 상(像)을 그려서 본국에 보냈고 △그러자 조선에서는 어떻게 처치할 수 없어 마침내 절에다 두었으며 △이후 초동 목수가 마음대로 구경했는데, 그 화상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진천 두타산 자락에는 영수사라는 고찰이 존재하나 관련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다음 회에 소개하겠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오척을 황족으로 대우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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