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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사표, 청암의 정신 기린다

송건호 선생 기념사업 본격추진
옥천군문화원, 창립총회 열어
내달 21일 생가에 표지석 세워

  • 웹출고시간2016.11.12 15:02:47
  • 최종수정2016.11.13 19:44:37

오는 12월 21일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송건호 선생 생가터에 세울 표지석 설계도.

[충북일보=옥천] 속보=한국 언론의 사표인 청암 송건호(1926~2001·사진) 선생 기념사업이 그의 고향 옥천에서 본격 추진된다.

<2015년 4월6일자 3면, 2016년 4월7일자 3면, 10월4일자 3면, 28일자 3면>

송건호 선생

 속보=한국 언론의 사표인 청암 송건호(1926~2001·사진) 선생 기념사업이 고향 옥천에서 본격 추진된다. <2015년 4월6일·7일, 10월4일·28일 3면>
 옥천군문화원은 지난달 26일 송 선생 기념사업회 발기인 대회를 가진데 이어 11일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영만 옥천군수, 최연호 옥천군의원, 이인석 전 옥천문화원장, 이안재 옥천신문사 대표, 김태은 문화관광과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에서는 '청암 송건호 기념사업회'라 명칭을 공식화하고 사업회의 목적, 회원, 임원 및 기구, 총회, 이사회 등을 담은 정관과 생가터에 세울 표지석 설계도를 승인했다.
 특히 송 선생이 별세한 지 15년이 되는 12월21일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생가터에 세울 표지석 설계도를 공개했다.
 표지석은 화강석 받침 위에 길이 90㎝, 높이 45㎝의 크기의 반원 형태의 오석 정면에 김성장 시인이 '참 언론인 송건호 선생 생가터'라 썼다.
 배면은 '옥천군과 청암 송건호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세우다'로 했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2017년 2월 정기총회를 통해 향후 사업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다. 청암은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1953년(당시 28세)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언론생활을 시작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1974년(당시 49세)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고 1980년(당시 55세)에는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을 거쳐 1988년(당시 63세)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1년(당시 76세) 타개할 때까지 현역 기자는 물론 재야 언론인으로서 정도를 걸으며 많은 족적을 남겼다.
 이인석 회장은 "앞으로 기념사업회가 할 일이 많지만, 옥천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송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사업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옥천 / 손근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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