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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1.08 14:14:50
  • 최종수정2016.11.08 14:15:32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한확(韓確 , 1403~1456)은 우리고장 청주가 관향으로, 태종~세조 등 4임금을 모셨다. 그는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고, 성종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등 말 그대로 일생의 영달을 누렸다. 그 바탕에는 여말선초의 공녀(貢女) 제도가 있었다.

한확에게는 최소 2명의 누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 가운데 손위누이는 태종대에 명나라 공녀로 진헌돼 영락제(명 태종)의 후비인 여비(麗妃)가 됐으나 영락제의 급서와 함께 순장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명나라 선덕제

한확의 막내 여동생은 명나라 선덕제의 공녀로 간택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녀는 미색(美色)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나있었고, 따라서 제 4차 공녀 때 한양도성을 떠나 명나라로 가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몸이 갑자기 아파 명나라 출발이 연기되었다.

'처녀 한씨(韓氏)는 한영정의 막내딸이다. 맏딸은 명나라 태종 황제의 궁에 뽑혀 들어갔다가, 황제가 죽을 때에 따라 죽었으므로,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아뢰었으므로, 와서 뽑아 가게 되었는데, 병이 나게 되어(하략).'-<세종실록 9년 5월 1일>

공녀가 된다는 것은 생이별을 의미한다. 나중에 이름이 한계란(韓桂蘭)으로 확인되는 한확의 막내 여동생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오라비 한확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기를 공녀로 간택하였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녀는 혼기가 차 혼수품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그녀는 혼수를 갈기갈기 찢으며 치료약을 건네주는 오라비 한확을 원망하였다.

'그 오라비 한확(韓確)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누이 하나를 팔아서 부귀가 이미 극진한데 무엇을 위하여 약을 쓰려 하오." 하고, 칼로 제 침구(寢具)를 찢고 갈마 두었던 재물을 모두 친척들에게 흩어 주니, 침구는 장래 시집갈 때를 위하여 준비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내관[내시]은 한계란의 미색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10년(1428) 공녀 차출을 재집행하기 위해 한양도성 한확의 집을 다시 찾았다.

'사신(使臣) 등이 처녀 한씨(韓氏)의 집에 갔는데, 한씨는 일찍이 간택되었으나 병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와서 본 것이었다.'-<세종실록 10년 7월 21일자>

조선시대 역사를 통틀어서도 한 집안에서 두 명이 공녀로 간택된 것은 거의 드문 사례이다. 한양도성 안이 술렁였고, 특히 여비가 순장당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계란의 명궁행을 '생송장'이라고 부르며 슬퍼하였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士女)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궁인(永樂宮人)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生送葬)이라 하였다.'-<세종실록 10년 10월 4일>

그러나 그녀는 언니 여비와 달리 명궁에서 74세까지 천수를 누리면서 4명의 황제를 모시었다. 그녀는 57년이나 명궁에서 지내면서 품위와 품격을 갖춘 언행으로 공신부인(恭愼夫人)의 시호를 받았다.

'부인의 휘(諱)는 계란(桂蘭)이니 대대로 조선국 청주(淸州)의 재상 집안이다. (중략) 이제 57년이 되었는데, 네 조정을 거쳐 섬기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게 조심하여 말을 망령되게 발하지 아니하고 행동이 떳떳함이 있으며, 또 성품이 착하여 능히 여러 사람과 화목하므로 빈어(嬪御)의 무리가 신임하고 의심하지 아니하였다.<성종실록 15년 1월 4일>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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