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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1.02 20:54:03
  • 최종수정2016.11.02 20:54:0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우리나라의 대도시 지명에서 유일하게 한자가 아닌 순우리말로 된 지명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이다. 일제시대에도 경성이라 불리던 지명이 어떻게 해서 순우리말인 서울로 바뀌게 되었을까?

창지개명의 잔재 청산을 위한 우리의 노력의 산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실은 해방후 미군정청이 해방과 함께 일방적으로 준 선물이었다. 미군정청에서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구어로서의 '서울'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다보니 국제적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독립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방을 맞게 되면서 지명을 회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우리는 기존의 일본식 지명을 토박이 이름으로 되돌리지 못하고 모조리 한자로 바꾸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강제병합 이전의 지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일본이 멋대로 변경하고 왜곡하고 합친 일본식 지명에서 정(町)을 동(洞)으로 바꾸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그나마 서울시에서는 조금 신경을 써서 세종대왕, 이충무공, 을지문덕 장군, 원효대사, 이퇴계, 민충정공 등 6명의 선현의 시호를 채택해 세종로(광화문통), 충무로(본정통), 을지로(황금정통), 퇴계로(대화정통), 원효로(원통) 등으로 가로명을 변경하여 생색을 내었지만 지방 도시는 일본이 무분별하게 바꾼 이름을 그대로 두고 행정 단위만 바꾸는 데 그쳤으니 이제라도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 조상들의 꿈과 이상이 서리고 삶과 생활이 녹아있으며 반만년 역사가 올올이 스며있는 땅 이름을 찾아내어 하나씩 옳게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인구의 이동과 국토개발로 인한 급속한 지형의 변화로 고유의 이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실정에서 아무리 서둘러도 빠르다 할 수 없으므로 마음만 조급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1914년 일제에 의한 청주의 지명 통폐합 실태를 살펴 보자.

동주내면의 문외리와 남주내면의 보십(甫十), 천변(川邊), 장대(場垈), 서림(西林), 석교(石橋), 옹성(甕城)의 6개 동리와 북주내면의 북리(北里), 동리(東里), 서리(西里), 원리(院里)의 4개 리를 병합하여 청주면이라 해서 문외리(門外里), 도하정(稻荷町), 제정(堤町), 성동정(城東町), 성서정(城西町), 동정(東町), 서정(西町), 남정(南町), 북정(北町), 욱정1·2·3정목(旭町1·2·3丁目), 상생정(相生町), 대교정(大橋町), 본정 1·2·3·4·5·6정목(本町1·2·3·4·5·6丁目), 청수정(淸水町), 대흑정(大黑町), 시장정(市場町), 신장대(新場垈)의 24개 동리로 개편 관할하였는데 1920년과 1935년 두 번에 걸쳐 사주면의 교동(校洞), 금천(金川), 영운(永雲), 운천(雲泉), 화여(華與), 산북(山北), 교서(校西), 외덕(外德), 내덕(內德)의 9개리를 편입해서 교동(校洞)을 대성정(大成町)으로, 교서(校西)를 수정(壽町)으로, 영정(榮町)을 새로 설치하였다가 해방후인 1947년 왜식 동면 변경에 의하여 본정 1·2정목을 남문로 1·2가로, 본정 3·4·5·6정목을 북문로 1·2·3가로, 욱정 1정목과 문외리, 도하정을 합하여 서운동(瑞雲洞)으로, 욱정 2·3정목과 상생정, 남정, 청수정, 대흑정, 시장정, 신장대를 합하여 남주동(南州洞)으로, 도하정 일부와 성동정, 동정을 합하여 문화동(文化洞)으로, 성서정과 서정을 합하여 서문동(西門洞)으로, 제정을 석교동(石橋洞)으로 고치었으며,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에 의하여 청주시로 승격되고 1963년 1월1일에 청주군 사주면의 용정, 명암, 용암, 사창, 개신, 가경, 복대, 송정, 봉명, 신봉, 분평, 산남, 미평, 농촌, 율량, 사천의 16개 리를 병합하여 39개 동리를 관할해왔던 것이다.

일제는 문외리(門外里), 옹성(甕城)과 같이 전해오던 지명을 무시하고 고유의 지명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본정 1정목(本町 1丁目), 본정 2정목(本町 2丁目)'으로 바꾸었으며 해방후에 일본식 지명을 없애는 데에만 급급하여 우리말로 된 지명인 '남문로 1가, 남문로2가'로 바꾸다 보니 고유의 지명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지명이란 땅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공동의 약속이므로 하루 아침에 바꾸어 부르기가 쉽지 않으므로 '본정통'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매 우리말을 사랑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본정통'을 '성안길'로 바꾸어 부르자는 캠페인이 일어나 지금은 '성안길'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지녀온 고유의 이름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청주의 역사와 청주읍성의 형태를 고려한 것이므로 도시 구조와 지형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지역의 지명을 만드는 본보기로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일제에 의하여 창지개명(創地改名)된 지명의 잔재 청산이 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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