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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노란 창호지 같은 깻잎이 바람에 팔랑인다. 멀리서 보면 금빛 나비가 떼로 앉은 것 같다. 가을이 물드는 억새밭 들머리에서 한나절은 행복했었다. 가을이면 누가 그렇게 황금물을 흩어 뿌리는지 밟기만 해도 금물이 묻어날 것 같다. 처음에는 묽은 황금물이었을 텐데 결이 삭고 물들면서 이슬이 촉촉 내렸을 테지. 하나씩 따서 덧놓을 때는 투명한 날개가 닿는 듯 했다. 가을이 구워낸 이파리에 볕이 통과하면 햇살이 이듬으로 굽는 것 같고 너른 들은 일약 금싸라기 밭으로 바뀌곤 했다.

어떤 것은 옷깃에 닿으면서 나풀나풀 떨어지기도 했다. 얇은 창호지 하나 걸쳐 놓으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지만 언젠가 서리가 일찍 내리던 그 해의 깻잎은 예쁘지 않았다. 가을 태풍이 잦아 그런지 바람에 팔랑대거나 옷깃만 스쳐도 떨어지는 느낌은 없이 투박하기만 했다. 여느 때 같으면 물기를 털어내면서 노랗게 결삭을 텐데 지분대는 가랑비에 그리 되었다 보다.

두툼한 깻잎도 마땅찮거늘 하물며 점박이다. 어른들은 고상한 말로 황이 내렸다고 하지만 투박하게 백인 이물질은 흉했다. 샛노란 들깻잎을 생각하면 의외였으나 소금에 삭힐 때는 훨씬 더 흉하다. 예쁘게 담은 깻잎 김치가 바닥나면 소금물에 삭힌 것을 먹게 되고, 그 때 약물처럼 시꺼먼 물이 나오곤 했으나 일련의 순서다. 잘 말린 들깨도 기름을 짜면 깻잎같이 노르스름한데 깻묵은 거무튀튀했다. 깻잎 같은 화려한 속에도 꺼먼 색소가 들어 있고 칙칙한 들깨 역시 기름을 짤 때는 의외로 곱다.

산뜻한 들기름과 소금물에 삭힌 깻잎도 마찬가지다. 투명한 만치 칙칙하고 아기자기했던 만치 거무튀튀하게 보였다. 뜻이 있는 것 같다. 깻잎을 딸 때마다 선명한 빛깔에 빠져들지만 처음에는 시퍼렇기만 했다. 갈볕에 노르스름 물들면서 노란 보자기를 펼친 듯 예쁜 것을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도 깻모를 붓고 난 뒤 올라오는 억센 깻잎 같은 과정에, 가을의 황금종이 같은 전성기가 있다. 억센 깻잎을 보고 황금종이를 연상하기는 어렵듯이 삶 또한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화려하다가도 어느 순간 꺼먼 물이 나오고 칙칙한 들깨알에서 기름이 나온다는 게 더 정석이다.

멀리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 간다. 둑 너머로 실개천이 흘러가고 산국이며 구절초가 연연히 곱다. 볼수록 그림 같은 정경이되 가을 역시 한여름 먹장구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무덥고 지루했던 만치 그 속에서 영근 가을은 곡식조차도 빛깔의 향연을 펼치듯 금물결로 출렁인다. 단풍 또한 수많은 색지를 겹쳐 놓은 듯 예쁘지만 가을은 늘 여름의 장막 뒤에서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지금은 아기자기 고운 깻잎이어도 여름을 나지 않으면 노랗게 결삭을 수 없는 것처럼.

깻잎 한 장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집에 가서 무쳐 먹을 생각을 하니 자못 설렌다. 살짝 데친 후 고명으로 실고추와 쪽파를 얹으면 한껏 정갈하고 맛깔스러울 테지. 눈부신 햇살과 팔랑이던 들깻잎 환상도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이렇게 고운 잎이 소금에 삭히면 뜻밖의 색깔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그게 삶이다. 노란 깻잎에서 칙칙한 물이 나오고 시꺼먼 들깨알에서 샛노란 기름이 나온다면 우리의 전성기에도 역경과 시련은 있었다. 황금기일수록 금방 사라진다면 어려움 또한 금방 지나간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탄력성 문제라는 것을 새삼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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