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6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박선예

수필가

이웃 언니한테 차나 한잔 하자고 카톡이 왔다. 마침 한가하던 참이라 얼른 초대에 응하였다. 언니 집에 들어서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날도 더운데 다들 오느라 고생 많았지· 이렇게 와 달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친구 중 한명이 농사를 짓는단다. 이 농사 저 농사를 골고루 지어보았단다. 그중에서 고추와 참깨 농사가 소득이 좀 나아 올해는 두 작물을 많이 심었는데 대풍년이란다. 그래서 소비자와 직거래로 연결되지 않으면 제값받기가 어려울 것 같단다. 그러니 김장고추와 참깨는 무조건 그 친구한테 사라고 사뭇 협박이다.

"며칠 전에 말이야, 붉은 고추 따는 것을 도와주러 갔거든. 그런데 밭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덥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바로 줄행랑을 쳤지."

그날 이후 언니는 마음이 편치 않단다.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에 비 오듯 흐르던 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려 가슴이 아프단다.

"친구야, 너 그러다 죽는다. 더위가 좀 누그러지면 일해도 되잖아. 이 폭염에 밭에 나가다니 제정신이니?"

언니가 적극 말려도 친구는 요지부동이란다.

"고추도 따야하고 깨도 베어서 말려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야. 수확할 시기를 놓치면 일 년 농사를 망쳐. 힘들어 죽을 지경이지만 어떻게 해. 별 수 없어. 참고 해야지. 고추랑 참깨 값이나 잘 받았으면 좋겠다."

친구의 말을 듣고 언니는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그래 이거야, 제값 받도록 돕는 게 내가 할일이야.'

언니가 우리를 소집한 이유는 친구가 수확한 농산물 팔아주기 위해서였다. 언니의 깊은 속내와 친구사랑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참 좋은 생각이네. 우리도 생산자한테 직접사면 가격도 저렴하고 상품도 믿을 수 있으니깐 서로 좋지."

"맞아 신토불이라고 우리지역 고춧가루로 김장해야 더 맛이 있겠지."

썩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모두들 고추만 주문하고 참깨는 주문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참깨는 왜 주문 안 하는 거야·"

언니의 말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답하였다. 우리나라 참깨는 너무 비싸서 못 먹는다고….

국산 참깨가 우리네 밥상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수입참깨보다 무려 서너 배는 비싸니깐 아무나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아니었다. 그렇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민들은 국산 참기름조차 먹기 힘들어졌다.

"아이고,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그래. 누구는 송로 버섯에 샥스핀에 캐비아를 먹는데. 국산 참기름도 못 먹는다니. 우리가 너무 불쌍하고 비참하다."

"까짓 우리도 송로버섯 한번 먹읍시다. 일인당 560원이라는데."

"560원이던 56원이던 꼭 이 시기에 그런 걸 먹어야 하나? 민심이 폭염보다 더 들끓는 줄도 모르고."

감동의 직거래 모임이 울분의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혹시 그들이 알면 국산 참기름도 못 먹는 사람들이 자격지심 때문에 그러는 거라 여기지 않을까? 웃기는 꼴통 진보들이라고 비웃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하지만 그들도 알아야만 한다. 송로버섯가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값도 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을, 국민 대다수는 이미 많이 양보하고 포기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단언컨대 이 울분은 단지 참깨 때문만이 아니란 걸 말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