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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눈도 귀도 없습니다. 저만치 세월 밖에 나앉아, 언짢은 것을 봐도 말없이 삭이며 거슬리는 얘기 들어도 잠자코 흘려버린 채 묵언 수행 중인 군상들.

김치광에 널려 있는 누름돌 모습입니다. 이목구비가 없으니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할 것 같은데 둥글둥글한 게 무척 푸근합니다. 필경 어느 산골짜기에서 떠내려 와 저리 바뀌었으련만 지금은 또 바람모지 뒤꼍에서 자신을 둥글리고 있습니다.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굴러 내려 와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시달리던 아득히 그 때처럼.

엊그제 오이지 항아리를 정리했습니다. 누름돌 다섯 개도 멀쩡 씻어두었습니다. 한 접 가량 담가서 먹다 보면 한창 맛있을 때 외에는 군내가 나게 마련인데 맨 밑에 있는 것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꼭꼭 눌러두는 누름돌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용물이 들떠서 자칫 상할 수가 있거든요.

아주 흔한 돌이지만 정갈한 밑반찬을 먹을 수 있다면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그래 김장독에도 덮고 깻잎이나 고추를 삭힐 때도 쓰입니다. 지그시 누르고 있을 때 보면 압력을 가하는 게 아닌 다독이는 모습입니다. 별달리 강한 힘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그로써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모든 게 원만해질 테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돌인데 소홀히 해 왔습니다.

성격이 급한데다가 무거운 걸 들지 못하는 까닭이지만 살다 보니 지그시 눌러줄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그 때부터 누름돌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지요. 평소 좌우명이나 지침을 정해 놓고는 힘들 때마다 참고 견디는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되 콘트롤은 각자의 소관입니다. 여하한 일에도 참고 견디는 것은 자기 향상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기왕이면 바닥에 있는 오이지가 장마철에도 깔축없이 싱싱했던 것처럼.

가끔 머리를 맞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똑같이 둥근 걸 보면 아무런 다툼 없이 구순하게 지낼 것 같습니다. 그들 중 모난 것 하나만 있어도 타박하지 않고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다듬어진 게 훨씬 정겨운 느낌입니다.

누름돌 없는 김치와 집고추 등의 밑반찬은 군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들뜨지 않게 하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상하게 되고 전체의 맛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웃기돌이라는 이름도 따로 있었습니다. 누름돌의 의미는 꾹 눌러두는 거지만 웃기돌이라고도 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지그시 눌러대는 역할을 드러내지 않을까요.

가끔 생각이 난 듯 누름돌을 씻어줍니다. 먼지가 앉은 게 미안해서 헹구는 것뿐이지만 가져올 때보다 매끈해진 걸 보면 그 동안도 계속 둥글어졌습니다. 우연인지 그 자리가 또 물받이 홈통이군요. 장마에는 지붕의 흙탕물에 씻기고 겨울에는 눈 녹은 물에 시달렸으니 처음보다 반들반들해진 건 당연합니다.

저리 되도록 숱한 세월 둥글려 왔는데 뭐가 더 부족하랴 싶지만 삶 역시도 그랬습니다. 우리 또한 더 많이 시달리고 단련되어야겠지요. 상류의 모난 돌에서 반들반들해진 조약돌이 삶의 지침이 되는 것 때문에도 남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류의 돌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삶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들 중에는 모난 사람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궤적을 새삼 돌아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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