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6.25전쟁 첫 전승지 충주동락전승비 제막

20억 들여 동락전승지 성역화사업 준공
후세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

  • 웹출고시간2016.07.07 09:14:46
  • 최종수정2016.07.07 13:43:13

6.25전쟁 첫 전승지 충주동락전승비 제막식 및 기념식이 7일오전10시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산 37-4번지와 동락초 운동장에서 열렸다.

[충북일보=충주] 6.25한국전쟁 첫 전승지인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동락전승지 성역화 사업이 마무리돼 7일 오전 10시 동락전승비 제막행사와 함께 전승 기념식이 열렸다.

충주시는 2014년 토지매입을 시작으로 신니면 송암리 산 37-4 동락전승지에 사업비 20억원(국비 7억7천만원, 도비 2억3천100만원, 시비 9억9천900만원)을 투입해 전승비 재 건립, 상징조형물 건립, 공원 및 주차장 조성 등을 완료했다.

동락전투는 당시 우세한 화력으로 충주 동락초등학교에 집결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맞아 당시 동락초 교사였던 김재옥(1931~1963) 여교사의 용기와 기지로 국군 제6사단 7연대 2대대 김종수 소령과 신용관 중위의 판단력으로 승리한 6.25 발발 이후 국군 최초의 승전을 기록한 전투이다.

당시 적 사살 2천186명, 포로 132명, 탱크 4대, 트럭 60대, 짚차 15대, 무기 1천200여 점을 노획하는 첫 전과를 올렸다.

특히, 이 전투는 국군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이때 노획한 무기가 공산국인 소련제로 확인되면서 남침근거를 확보해 유엔 16개국이 한국전에 참전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동락전투의 이런 역사적 의미를 살려 1973년에 최초의 전승비가 세워졌고, 이날 새로운 전승비와 상징조형물이 건립됐다.

오전10시 제막식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 조길형 충주시장, 당시 승전영웅인 신용관 장군과 김재옥 교사의 아들 이훈씨, 김상흥 5중대장의 아들 김병한씨, 이방호6.25참전유공자회충북도지부장을 비롯한 보훈단체장, 박신원 37사단장을 비롯한 6사단7연대 장병, 37사단 장병,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해 준공을 축하했다.

이어 오전11시 동락초 운동장에서 6.25참전유공자회 충북도지부 주관으로 1천여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첫 전승 충주 동락전투 기념식'이 열려 그 날의 승전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새겼다.

이시종 지사는 "당시 풍전등화와 같았던 대한민국의 운명을 살린 위대한 승전으로 '동락대첩'이라고 칭하자"며"앞으로 동락 전승의 의미와 뜻을 더 확산해 후세들에게 나라사랑의 정신을 계승하는 숭고한 장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조기형충주시장도 "동락전승지를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한 역사교육의 장 및 6.25전쟁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호국보훈의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충주 / 김주철기자 kimjc5611@hanmail.net.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