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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성안길'이라는 우리말 지명은 '성안에 있는 마을길'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청주 도심을 가리키는 친숙한 이름이 됐지만 불과 20년 전까지도 이 곳은 '본정통'으로 불렸다. 일제가 1911년 청주읍성을 철거한 뒤 '본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부터다.

현재는 '방아다리'로 불리는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3가의 방아다리의 이름도 일제가 일본식 주소 체계인 '오정목'으로 명명한 이후 오랫동안 그렇게 불리어 왔다. 일제 잔재를 뿌리 뽑아 우리말 지명으로 바꾼 것은 '청주 문화사랑모임'이라는 민간단체의 피땀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00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 민간단체는 수개월 동안 1천여명의 시민 설문조사와 전문가 심사 등을 통해 이름을 공모했고 결국 지금의 지명이 붙여지게 됐다고 하는 데 사실은 이곳의 옛 지명이 방아다리였으며 옛 지명을 다시 찾아 쓰게 된 것이다.

방아다리라는 지명은 이곳만이 아니라 전국에 많이 있는데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닌 말일까?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리의 방아다리들, 보은군 내북면 화전리의 방아다리들,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던 옛 지명인 방아다리,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의 방아다리, 충남 공주시 유구읍 신달리의 방아다리골 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방아와 연관된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에서 강서대로가 만나는 자리에 있던 다리를 방아다리라고 부르는데 이 일대는 김포평야의 일부로서 대부분 논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방앗간이 있었다고 한다. 방앗간 앞에는 지천이 있었는데 비가 오면 물이 불어 건너에 있는 논에 다닐 수가 없자 방앗공이를 엮어 다리를 놓았다. 괴목(槐木)으로 된 방앗공이가 튼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건너다니게 되자 이 다리를 방앗공이다리라고 불렀고, 줄여서 방아다리라 불렀다고 한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방아다리 마을은 경동시장과 오스카극장이 있던 곳이다. 기름진 땅으로 이름이 났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종묘장이 있었고 정릉천이 마을 복판을 흐르므로 방아 모양의 다리가 있던 곳이라 전해진다.

그런데 예전에는 '방아다리'라는 말이 여자들이 가지고 노는 '허수아비 모양의 노리개(갈라진 다리가 움직여 방아찧는 것을 묘사한 것이지만 남자의 성행위를 상징)'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던 말이었으며, 지금도 고추가 자라면서 첫번째로 가지가 갈라지는 Y 모양의 줄기를 방아다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앗간이 있었던 다리'라든지, '방앗공이로 만든 다리' 라고 하는 등 '다리(橋)'로 보는 것은 '방아다리'의 후부에 있는 '다리'에 얽매여 억지로 연관시킨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방아다리는 '다리(橋)'가 아니라 Y 모양의 지형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곳이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 용동 앞들에 있던 방아다리로서 두 개의 개울물이 합해지는 모양이 방아다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척천리에 있는 방아다리약수터도 주변의 지형이 디딜방아의 다리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척천약수라고도 부른다. 방아다리는 본래 얕은 냇물이 흐른다는 의미를 지닌 척천리(尺川里)의 북서쪽에 있던 마을의 이름이었으며 마을의 지형이 방아다리와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방아다리는 저교(杵橋)라는 한자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의 방아다리골 역시 마을의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다리처럼 골짜기가 Y자형으로 길게 뻗어 있어 생겨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이상에서 볼 때 방아다리는 디딜방아처럼 Y자형으로 갈라진 지형을 가리키는 의미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디딜방아는 모두 '외다리방아'라는 점이다. '두다리방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다. 디딜방아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두 틀의 외다리방아를 나란히 놓고 쓰면서 두다리방아는 창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디딜방아는 가벼우면 곡식이 잘 찧어지지 않고 무거우면 한사람이 밟는데 힘이 들어 계속할 수가 없는데 두다리방아는 둘이 밟으므로 빠른 시간에 쉽게 곡식을 찧을 수 있는 신발명품이었으니 생활에서 늘 마주하는 디딜방아의 형태를 지닌 지형을 일상생활에서 항상 사용해오던 이름인 방아다리라 부르는 것이 어찌 자연스럽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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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