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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5.03 14:37:07
  • 최종수정2016.05.04 08:42:07

조혁연 객원 대기자

'임꺽정(林巨正)'은 우리고장 괴산출신 홍명희(洪命憙·1888~?)가 지은 일제 강점기의 장편소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임꺽정(?~1562)은 조선 중기인 명종대에 실존했던 도적의 우두머리이다.

성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둑으로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을 꼽은 바 있다. 백정 출신으로 알려진 임꺽정은 서울까지 진출하는 등 신출귀몰하였다. '명종실록'의 사관은 사론(史論)에서 이렇게 썼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해 살을 깎고 뼈를 발리면 고혈이 다 말라버린다. 수족을 둘 데가 없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기한(饑寒)이 절박해도 아침저녁거리가 없어 잠시라도 목숨을 잇고자 해서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명종실록 16년 10월6일>

임꺽정은 조선 조정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지 약 3년 만에 잡혔다. 임꺽정을 생포한 인물은 당시 경기·황해·평안도의 3도 토포사(討捕使) 남치근(南致勤·?~1570)이었다.

토포사는 조선후기 도적이나 반란 세력의 진압 임무를 맡은 특수 관직을 말한다. '국조인물고'는 남치근이 임꺽정을 체포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재령(載寧)으로 나아가 먼저 적의 모주(謀主)를 사로잡아 그 허실을 파악하였으며, 많은 병마(兵馬)를 동원하여 적굴을 에워싸고 호령을 엄하게 하니, 한 도둑도 도망치지 못하였다. 다급해진 그 무리들이 투항해 오자 오는 족족 참하였고 마침내는 그 괴수를 붙들어 효시하고 돌아왔다.'

남치근은 그 상으로 노비 100구(口)와 전지(田地) 50결(結)을 받았다. 조선시대 노비는 재물로 취급했기 때문에 숫자를 세는 단위는 명(名)이 아닌 한 입 두 입의 '口'였고, 1결은 대략 3천평 정도였다.

<해동지도>의 조령.

남치근은 승승장구를 해 경상도 병사(병마절도사)가 돼 우리고장 연풍 조령을 넘었다. 이때 조령 정상에는 전회 밝힌대로 산신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음사(淫祠), 즉 미신스런 사당이라며 이를 철거한 인물이 남치근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문헌으로 '임하필기(林下筆記)'가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광범한 분야의 생각을 한데 모은 것으로 지금도 한국학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는 필수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 문헌에는 '음사(淫祠)를 없애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남치근이 경상병사가 되어 조령을 넘는데 역졸이 말을 가로막으며 산언덕을 향하여 말하기를, "이곳은 예로부터 국사신당(國祀神堂)이 있던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는 사신과 장사치들은 모두 절하고 무릎 꿇고 기도한 후에 갔습니다." 하니, 남치근이 곧장 사당 앞으로 가서 사당 건물을 모두 헐어 버리고 미륵을 부숴 버리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남치근은 조령 아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사당 건물의 터를 삽으로 파내어 연못으로 만들도록 명령하였다.

인용문의 내용은 남치근이 한양에서 경상도로 부임할 때 일어났다. 그렇다면 '조령 아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연풍 지역민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연못터가 남아있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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