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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봄비가 내린다. 소올솔 빗방울이 하늘에 명주발처럼 드리워졌다. 불빛 새는 창가에 실비 베틀 올리면 수 천 만 명주 올이라도 자아낼 것만 같다. 꽃잎 버는 뜨락에 물방아 돌려서 수많은 꽃 이야기 여울지게 하고도 싶다. 비가 내려도 우산이 필요치 않은, 우산은커녕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을 만치 아련한 정경이다.

갑자기 안개 빛 호수가 펼쳐진다. 빗줄기가 그려 둔 오선지에 음표가 새겨지면서 온 하루도 아닌 밤에만 다가오는 실여울 꽃비다. 이른 봄 처음 돋는 새싹이 연하듯 봄 자락 타고 오는 세올 고운 노래는 들릴 듯 말 듯 떠올랐었다. 날실만 드리운 채 하늘과 땅을 재며 끝없이 흩뿌렸다.

문을 열고 나오다 보니 꽃밭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꽃이 아니면서도 가장 먼저 꽃으로 핀다. 잎사귀 하나 스치기만 해도 퉁겨지는 하늘과 함께 구슬이 쏟아져 내린다. 새들이 토해 놓은 구슬 또는 별들의 꿈처럼 보인다. 꿰어졌다고 하기에는 실 자락 하나 없고 맺혀진 것으로 보기에는 자취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뜰이 다 환해진다. 누군가 둥글리기나 한 듯, 저마다 다른 모습이 꿈결처럼 떠오른다. 덜 벙근 꽃잎을 매만지던 보슬비가 창문을 두드리면서 잠든 아기를 깨우기도 한다. 그럴 때의 하늘은 꽃잎이 날리는 듯 했고 잠을 깬 아기도 봄비의 기척을 아는지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있으라고 하면서 속잎을 깨우는 이슬비도 한몫 거들었다. 보슬비가 얼굴을 간질이는 날은 뜨락의 꽃망울이 온통 벌어졌다. 그렇게 부드러운 결을 사뿐 늘이면 작은 새는 덩달아 구슬을 물어 올린다. 물 오른 새싹이 다칠까 꽃송이 잘못 터뜨려질까 봐 남몰래 살짝 살짝 다녀가는 게 보기만 해도 미소가 떠오른다. 하늘하늘 날리는 것처럼 사르르 속삭이는 것처럼 내린 후 연출된 풍경이다.

봄비는 그렇게 역할이 다르다. 한 번 날릴 때마다 새싹이 돋는 이슬비, 흩뿌리면서 푸르러지는 실비와 꽃잎을 새기는 보슬비 또한 저마다의 역할로 부여받은 이름이다. 자신이 있어서인지 차근차근 지난 해 다녀 간 순서대로 잔디밭 지나 비둘기 날개를 쬐끔 적시며 조용조용 뜰 전체를 순례한다. 이제 비가 그치고 나면 풀뿌리와 나무뿌리 적시며 또 다른 봄의 선율을 준비할 것이다. 잔디밭 사이사이를 어떻게 들어갈지 눈물 같은 실비가 이제 얼마나 더 비를 뿌려야 할지를 망설이며 봄의 축제를 준비한다고나 할까.

꽃밭 모서리 빨랫줄도 이슬 잔뜩 머금었다. 서 말 가웃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듯 가닥가닥 맺혔다. 무거울 것 같은데 섬세한 줄이 퉁겨질 듯 가든하다. 햇살이 비치면 무지개가 번뜩이고 구슬로 반짝인다. 거미줄이 구슬을 꿴 것인지 거미줄에 구슬로 맺혔는지 생각하다 보면 볕이 들고 구슬은 죄다 사라졌다. 꽃밭에서는 꽃보다 먼저 피더니 거미줄에서는 보석으로 새겨지자마자 달아난다.

장신구에 관심이 없는 것 또한 꽃이면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이슬 때문일까. 갓 돋은 싹에 맺힌 물방울은 자잘한 비취 모양이고 마고자 단추마냥 큰 물방울은 수천 카레트짜리 다이아몬드 같다. 아무리 정교해도 햇살의 방향과 잎이나 꽃 색깔로 효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비가 올 때마다 구슬 촘촘한 꽃밭은 나만의 보석함이다. 누군가는 세트로 장만한다지만 변변한 보석 한개도 없는 나는 그렇게나마 운치를 즐긴다. 봄비 내리는 날의 풍경이야말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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