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3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신찬인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28일 겨울답지 않게 비가 내렸다.

친구들과 스크린골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소설책도 읽고 기타도 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날씨가 갑자기 강풍과 한파 주의보가 내리더니 창밖에는 눈보라가 어지럽게 날린다.

사람 사는 것만큼 이나 날씨가 변덕스럽다.

문득 지난 시절 분평동에 살 때가 생각나서 파카를 걸치고 뒷산으로 향했다.

그 시절만 해도 매일 새벽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심천으로 나갔었다.

겨울철 아무도 없는 무심천의 새벽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하천을 따라 부는 골바람은 살을 에듯 매서웠다.

밤새 쌓인 눈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족적을 남길 때 면, 왜 그리도 의식이 또렷해지고 심장이 뜨거워졌는지 모른다.

하루 중 의식이 가장 또렷하고 잡념이 없는 그 시간에 나는 무심천을 걸으며 사색하고 반성하고 계획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해지고는 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 위에 오르니 얼굴에 와 닿는 차디찬 바람과 눈보라가 내게 살아 있다는 기쁨을 더 해 준다.

동네 골목을 휩쓸고 다니던 눈발은 어느새 산까지 따라 올라 심술궂은 악동들처럼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촐랑대던 다람쥐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겁먹은 작은 새들이 풀죽은 소리로 끼룩거린다.

떡갈나무, 개암나무, 오동나무, 크고 작은 나무가 한 무더기가 되어 웅크리고 있는 숲 속은 적막하기만 하다.

불쑥 찾아온 추위에 의지할 곳 없는 작은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가늘게 떨고 있다.

숲속에 두텁게 깔린 낙엽들은 지난 여름이 얼마나 무성했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대지를 덮은 낙엽들 위로 조금씩 조금씩 하얀 눈이 쌓여 간다.

흩날리는 눈발에 수많은 날들,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모였다 다시 흐트러지기를 반복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마음 아팠던 일,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뻤던 일, 눈물겹도록 고마운 사람들,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 손잡고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다가왔다 멀어져 간다.

길이 편안하다 해서 즐거운 여정이 아니 듯, 삶이 안락하다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눈발이 거세어질수록 거친 숨에 뿜어져 나오는 삶에 희열은 더욱 커간다.

눈보라 거세어도 내게는 아직도 갈 길이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자 눈 날리는 하늘을 향해 가슴을 쭉 펴고 대지를 향해 두발을 힘차게 내디디자.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