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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3.1운동 막후 지원자는 증평출신 연병환

충대 박걸순 교수 구체적 사료 발굴
日 보고서 "연병환 체포로 불량배 종적이 끊겼다"
일경,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자 아편혐의 체포

  • 웹출고시간2016.02.28 18:23:34
  • 최종수정2016.02.28 19:26:51

연병환

[충북일보] 1919년 3.1 만세운동은 해외로도 번지면서 만주 용정지역에서도 일어났고, 이를 막후에서 지원한 인물은 증평출신 연병환(延秉煥, 1876~1926)이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한국독립운동사 등의 자료에 따르면 3.1운동 13일 후인 만주 용정의 서전대야(瑞甸大野)에서는 해외 독립운동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3만명의 동포들이 운집, 시위를 벌였다.

이날 용정지역 예수교 목사이자 대회장인 김영학(金永學)은 연단에 올라 독립선언포고문을 낭독하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표달한다' 내용의 공약삼장을 선포하였다.

연설 후 동포들이 일본총영사관으로 행진하려하자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맹부덕(孟富德) 부대가 발포, 현장에서 15명이 즉사하고 치료를 받던 도중 4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19명이 순국했다.

만주 용정정의 3.13 반일의사능. 1919년 3월 13일 시위 도중 사망한 19명중 13위의 조선인 영혼이 영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심양 세종조선어학교 김양은 <중국 조선 민족의 3.6 반일시위운동과 3.13 반일시위운동>(2000) 논문에서 '간도한족독립운동의사부의 주도로 12일 용정 천주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리면서 시작됐다'라고 서술했으나, 더 이상의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충북대 박걸순(사학과) 교수가 최근 발간한 《증평 곡산연씨 일가의 독립운동》을 보면 용정 서전대야의 3.13 만세운동을 막후에서 지원한 인물은 1907년을 전후해 중국으로 망명한 증평출신 연변환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의 1919년 6월 20일자의 보도 내용과 △일경이 1919년 8월 23일에 작성한 <재로지방면선인의 현황송부의 건>(在露支方面鮮人ノ現況送付ノ件) 등을 제시했다.

전자에는 '유명한 배일 조선인 연병환이 몰래 폭동에 가담한 혐의가 있어 일본 경찰이 중국 경찰의 입회하에 그의 가택수색을 하였더니 증거 물건과 함께 놀랄만한 커다란 아편 덩어리가 발견되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일경은 연병환이 독립운동을 막후에서 지원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을 찾지 못하자 체포 구실로 아편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 된다"고 저서에서 밝혔다.

후자에는 '6월 18일 용정촌 중국 세관원 배일선인(排日鮮人) 연병환을 체포하였는데 이로써 불량배는 점차 그 종적이 끊기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박 교수는 "연병환에 대해 일본을 배척하는 조선인이라는 뜻인 배일선인로 지칭하고, 또 마지막 불량배로 표현한 것은 그의 북간도 한인사회에서의 독립운동 비중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을 종합하면 연병환은 공무원 신분인 세관원으로서 운동 전면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막후에서 경제적 지원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영어에 능통한 중국 세관원으로서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연병환은 구금된 상태에서 2개월 동안 조사를 받고 석방됐다. 그러나 이후 일경에 의해 용정에서 방출돼 상해, 복건성 세관을 전전한 끝에 다시 상해로 돌아와 1926년 5월 14일(음력) 사망했다.

그동안 유해는 상해 송경령능원의 박은식 선생묘 옆에 안치돼 있다가 지난 2014년 영구 귀환, 현재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하고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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