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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나는 지금 2월의 터널에 서 있다.

2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터널이다. 바람은 차가워도 눈을 들면 멀리 햇살이 노곤하다. 허나 그도 잠시, 뒤돌아보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들판이 을씨년스럽다. 푹해진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겨울보다 춥다. 장독이 얼어터진다는 2월 추위는 만만한 게 아니나 봄은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하면 일없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지 않은 얼음판에는 낚시꾼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산기슭 골짜기마다 봄내음이 어렸다. 앙상한 가지에 포로소롬 봄이 깃든다. 개울가에 가면 얼음장 밑에 흐르는 봄이 느껴진다. 살얼음이 둥둥 떠가는 거기 실눈을 뜬 채 서성이는 버들개지가 보였다. 하얗게 웃으면서도 추워 글썽이는 모습을 이른 봄 액자에 찔러 두었다.

2월은 향수적인 절기다. 명색은 봄의 문턱인데 여전히 춥고 또 그러거나 말거나 봄을 향해 가는 게 그 저력이다. 기다리다 못해 체념이나 한 듯 떨고 있는 겨울나무와 웅크린 겨울언덕은 칙칙해 보이지만 그 속을 비집고 나오는 게 봄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골짜기를 향해 가는 것과 흡사했다. 까치발을 딛고서라도 봄을 맞이하는 모습도 같다. 풍경은 향수적이되 아직은 어수선한, 그런 속에서 봄이 된다.

가끔 2월의 터널을 거슬러 간 어디쯤에 보면 눈이 길같이 쌓여 있고 그 속에서 설중매는 핏빛 붉은 꽃을 터뜨린다. 노루귀와 복수초 등도 해사한 꽃을 새긴다. 봄 문설주는 여러 겹이지만 오랜 날 눈 속에서 망울을 새기고 잎을 틔웠다. 봄은 곧 한 겹 막을 두른 추위 속에서 오롯이 자라는 소망의 태아다. 봄맞이 문턱에서 피는 꽃 때문에 춘설이 날려도 푸근했던 것일까.

2월을 봄이라고 하는 건 아직 빠르지만 미리감치 봉오리를 새기는 꽃들처럼 아직은 추워도 봄이라고 하면서 견딘다. 봄 春자는 따스해지기 시작하는 3월이 어울릴 것 같다. 그나마 추워도 한참 더 추울 2월에 든 것은 눈더미 속에서 희망의 봄 메시지를 보란 뜻일까. 희망도 아직은 절망 상태 속에서 내일을 설계하고 꿈꾸는 과정이다. 그것은 또 절망의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이다. 따스하고 푸근해진 봄을 기다리기보다는 추울 때부터 준비하는 봄의 속내 그대로다.

꿈과 소망도 기회는 오겠지만 스스로 갈구하면서 찾을 때가 소중하다. 연년이 찾아오는 봄조차도 때를 기다리지 않고 일어나 싹을 틔우고 잎을 새겼다. 스스로 봄을 만들면서 초록을 준비하듯 모두가 자기 삶의 주자라면 모름지기 입춘을 맞아서 포부와 소망을 스스로 다져가야 할 것이다. 정작 봄은 아니어도 2월의 터널에서 설계하는 봄이 더 설렌다. 늪에서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도깨비불과 자잘한 꽃무더기가 가끔은 더 아름다운 것처럼.

산다는 것은 희망이고 희망은 설렘이다. 늦추위는 몇 번 남았다 해도 마른 덤불 속에서는 기지개를 켜는 봄 기척이 들린다. 때가 되어 찾아오는 봄을 기다릴 때의 겨울은 춥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보통 절기에 맞춰 오기는 하되 눈더미를 비집고 스스로 준비한 봄이야말로 따스하고 희망적이다. 어수선한 속에서 봄의 서곡을 준비하다 보니 얼음이 깨지고 눈이 녹았다는 교훈을 새기고 싶다. 봄을 향해 나가는 터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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