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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이번 명절날 어머니 묘소에 가는 길에 복수초를 만났습니다. 매섭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잔설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언덕에서 복수초를 보았습니다. 손톱만큼 한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고개를 처든 노란 꽃이 어찌나 반갑고 예쁘던지. "눈 크게 뜨고 봐야 혀. 그냥 지나가면 안보여." 어머니도 평소 이 복수초를 많이 좋아 하셨습니다. 늘 장독대 근처에 핀 복수초를 보며 그렇게 환하게 웃음 짓곤 하셨습니다.

명절이라고 시골에 갔더니만 예전 같진 않았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여러 식구들이 모여 떠들썩했는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형제간에 그리 살갑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계시던 방은 찬바람이 불고 조카들도 다들 결혼해 떠나거나 군대를 가서 그런지 썰렁했습니다. 잠시간의 침묵과 서둘러 떠나는 그 자리에서 제삿상의 촛불만 흔들립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도 커 보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수제비를 끓여 주셨습니다. 감자 넣어 끓인 수제비, 김치를 넣어 끓인 수제비, 가끔씩 애호박도 넣고 계란도 풀어 넣은 수제비를 끓여 주셨습니다. 조선간장 같은 어머니의 음식이 그때는 왜 그리 싫었던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차마 다 채울 수 없는 오남매의 허기를 수제비로 채우신 것 같습니다.

텅 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사는 집이라 반기는 것이라곤 티브이뿐 어제와 같은 컴컴한 방이었습니다. 평소 음식을 자주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은 수제비가 그리도 먹고 싶었습니다. 찬장에 남은 밀가루를 개고 이기며 허기진 마음을 달랬습니다. 냄비에 감자와 김치를 토막 내어 넣고 들기름으로 달달볶다 물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팔팔 끓는 물에 드디어 수제비를 숟가락으로 쳐서 넣었습니다. 뭔 설움이 그리 많은지, 다 익지도 않은 수제비를 꾸역꾸역 입으로 넣으며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한없이 보고 싶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쓰러져 누운 방바닥에 시리게 비춥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밤 새 술에 전 방 공기가 금세 시원합니다. 차가운 바람결에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마도 어미 잃은 날짐승 울음입니다. 얼마 지나면 온 들판은 새소리에 깬 파란 싹들이 일어서겠지요. 그 싹 위에 찬란한 흔들림으로 세찬 생명의 노래가 퍼질 것입니다. 어머니. 게으른 낙엽 같은 이불을 들추어내고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와 복수초 되어 환하게 피어나네요.

어머니의 흔적 속에 지난날을 그립니다. 한 청춘에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십대 청상을 그리 살라 했습니다. 밤새 대문간에서 가슴 졸여 기다리게 했습니다. 참 나쁜 자식이었습니다. 그래도 못난 아들을 껴안으시며 아프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살며 성한 데 없는 몸을 이끌면서도 꼭 안아 주셨습니다. 산허리에 노을이 집니다. 복수초가 어디론가 숨었습니다. 애가 타 눈물이 납니다.

살며 그리운 것들이 많습니다. 산다는 게 서로 뒤엉켜 온기를 느끼는 것일진대 세월이 갈수록 주위가 허허합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나를 뒤돌아봅니다. 비도 오고 바람 불고 꽃들도 피었다 집니다. 그저 그냥 거기에 서있는 산만이 허허 웃습니다. 눈물로 만나는 어머니의 모습이라 이렇게 저밉니다. 복수초 핀 날, 가슴에 노란 바람이 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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