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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1.28 14:57:15
  • 최종수정2016.01.28 15:31:42
드넓은 마당에 인파가 넘친다. 산사음악회에 참여하고자 모여든 사람들이다. 이름난 가수가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모처럼 고즈넉한 사찰 경내가 왁자지껄하다. 어수선한 소리를 뚫고 내 귀를 이끄는 명징한 소리가 따로 있다. 사람들이 등지고 있는 전각인 팔상전에서 울리는 소리이다.

팔상전 추녀 끝에 달린 풍경소리다. 물고기가 바람결에 노닌다. 한 마리의 물고기가 아닌 여러 마리이다. 나의 시선은 팔상전 일층 이층 … 오층 층층이 추녀 끝에 달린 스무여 개 풍경을 따라 이리저리 힘차게 움직인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화음도 다르다. 가수 신계행의 가을 노래를 바람이 시샘하는가. 아니다. 스님이 거처하는 전각 안 게으른 수행자에게 깨우침을 주느라 풍경이 울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중에서 물고기가 마구 흔들린다. 풍경이 신이 들린 듯하다. 강한 바람에 그 소리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다. 여러 개의 요령을 울리는 소리가 이만할까. 은은한 조명 빛 아래서 연주하는 핸드벨 소리가 이보다 나을까. 머릿속 상념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풍경소리로 가득하다. 함께 온 지인과 점점 멀어져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을 따라 팔상전 둘레를 돌고 있다.

여기에 이렇게 많은 풍경이 달렸던가. 오층탑 층층이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들. 전각이 새롭게 인지되는 순간이다. 대부분 전각의 추녀가 네 귀퉁이니 풍경도 네 개가 달려 있다. 하지만 팔상전은 오층탑이니 풍경이 몇 개인지 상상해보라. 바람이 건네는 풍경의 소리, 그 화음을 어찌 말로 다하랴.

팔상전 풍경에 시선이 꽂히니 경내 전각마다 추녀 끝만 눈에 들어온다. 산사음악회는 이미 뒷전이다. 지인을 등지고 혼자 물고기에 홀려 전각 순례에 나선다. 전각마다 풍경을 만나고자 발걸음은 빨라진다. 풍경도 제각각이다. 물고기가 달린 것이 대부분이나 법당엔 종만 단순히 달려 있다. 공중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없으니 무언가 빠진 듯 허전하다. 아마도 수행을 마치고 열반에 드신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 그런가보다.

팔상전(八相殿)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목조 오층탑으로 유명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탱화가 봉안된 전각이다. 속리산을 오거나 법주사를 들릴 때 수없이 보아 온 전각이다. 나 또한 국보급 내로라하는 문화재만 보았을 뿐이다. 건축물을 이루는 배경과 그의 부속품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풍경을 남들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했는데 그것 또한 말뿐인가 보다. 맑고 은은한 종소리가 좋아, 아니 공중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것이 좋아 박물관에서 작은 풍경을 집으로 데려왔다. 안방 테라스 지붕 끝에 달아놓고 허구한 날 물고기가 날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다. 풍경이 소리를 내야만 그의 진가를 알기 때문이다.
다시 바람이 인다. 여러 마리의 물고기가 느리게 춤을 춘다. 물고기들이 군무하는 듯 신기한 광경을 하나하나 톺아보느라 긴 목이 더 길어진다. 목이 뒤로 젖혀져 아픈 줄도 모른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생물이다. 그런데 풍경에 달린 물고기는 종의 추에 허리가 매여 꼼짝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아니다. 물속을 떠나 공중을 나는 물고기는 어찌 보면 열반을 든 자유로운 영혼인 듯싶다.

풍경은 왜 하필 물고기의 형상인가? 본디 불가에선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로 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의 추에 달린 모형도, 거대한 목어도 물고기의 형상이 아닌가. 몸빛 또한 총천연색이다. 산사의 단청과 흡사하거나 쌍계사 목어처럼 화려한 빛깔도 있다. 목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여기에 있다. 그 연유를 물어보고 찾아보니, 믿거나 말거나 한 재미난 설이 전해진다.
산사에 배우라는 도(道)는 멀리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한 채 망나니짓을 일삼던 유독 튀는 제자가 있었다. 그가 몹쓸 병에 걸려 죽어 다음 생에 업보로 물고기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등에는 커다란 나무가 솟아 헤엄치기 어려울뿐더러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칠 때면, 그 나무가 흔들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를 보다 못한 스승은 수륙제(水陸濟)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에서 구제해 준다. 제자는 참다운 발심으로 바르게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막대로 쳐주기를 청한다. 바로 '목어'이다. 수행자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고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잠을 멀리하고 수도하라는 것, 목어는 늘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있었다.

불교 의식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목탁' 또한 목어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목탁' 역시 목어의 형상이다. 다만, 크고 긴 모습이 아닌 짧고 둥근 형태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되었을 뿐이다. 물고기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목탁을 두드려 어둡고 혼미한 정신상태의 영혼을 구도하는 데 그 의미가 같지 않은가.

맑은소리를 듣고자 일부러 흔들어 대던 풍경이다. 이 또한 '목어'와 '목탁'이 내포한 의미와 다르지 않다. 나는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장식쯤으로 풍경을 걸어둔 것이다. 상점에 걸린 풍경과 무엇이 다르랴. 물고기의 형상에는 '깨우침'이란 깊은 진리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내 안의 물고기도 비상하여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지길 바란다.

달밤에 고즈넉한 침묵을 깨뜨리며 깊고 은은하게 퍼지는 풍경소리. 그 청아한 울림이 좋다. 투명한 울림은 마치 그의 본향인 산사로 날 인도하는 것 같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되어 고요하고 아늑한 순간을 맞이한다. 나를 반추하는 시간이다. 비로소 메마른 심상에 시심이 찾아들고, 물꼬를 트지 못하던 마음결도 민무늬를 그리며 고요해진다.

이은희 작가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2013년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김우종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결'

수필선집 '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 '수필세계', '에세이문예' 연재수필 집필 중, ㈜대원 경영지원본부장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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