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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청년 굴삭기 기사 최영진씨 "좌절은 없었던 한 해"

집채만한 기계로 정밀 작업해 내는 점에 빠져
지난 2010년부터 '기사'로 굴삭기 일 시작
시간 흐를수록 기술 늘었지만 월급은 똑같아
정당한 대가 치루는 업무 환경 만드는 것이 꿈

  • 웹출고시간2015.12.30 16:47:48
  • 최종수정2015.12.30 18:49:50

편집자

3D기피현상. 인력난의 원인을 지적하는 표현으로 불결하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을 기피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3D' 모두 아우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각종 공사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손에 삽을 들었건 중장비의 핸들을 쥐었건 그들은 '노가다꾼'이라는 조롱을 면치 못한다.
을미년 세밑, 굴삭기 기사 일을 천직(賤職)이 아닌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사는 청년 최영진(31)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충북일보] 지난 2011년 초 차갑게 내려앉은 겨울 추위에도 멈출줄 모르고 충북 도내에서 구제역이 불 붙은듯 번져나갔다.

수 명의 굴삭기 기사들은 돼지사육농가 인근 공터에서 깊게깊게 땅을 파 내려갔다. 축사에서는 돼지들이 쉼 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굴삭기의 기계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커다란 구덩이를 다 판 굴삭기들이 한 대 두 대 지면으로 올라왔다. 구덩이를 파던 굴삭기들이 모두 지면에 올라오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돼지 사체를 그 구덩이 속으로 차례차례 밀어 넣었다.

돼지의 사체가 차곡차곡 쌓였고 그 위를 석회 가루가 하얗게 뒤덮었다. 또 그 위에 돼지 사체를 쌓아 올렸다.

최영진씨가 굴삭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그 굴삭기 안에 최씨도 있었다.

당시 27살이었던 최씨는 돼지 사체를 묻던 그 날이 굴삭기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설프게 매몰작업이 된 곳에서는 침출수가 흘러 나왔고 그런 곳은 사체를 다시 꺼낸 뒤 매몰탱크에 재매몰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최영진씨가 굴삭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최씨는 그 재매몰 작업을 하는 곳에도 동원됐다.

그는 "첫 작업을 할 땐 돼지들이 불쌍하긴 했지만 참을만 했다. 사체를 꺼내서 다시 묻는 작업을 할 땐 이미 반쯤 부패한 사체도 나오고 냄새와 핏물까지…. 지옥 같은 작업이었다"라며 "그때가 일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인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씨는 증평공고 건축과에 다닐 때부터 집채만 한 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정밀한 작업을 해 내는 중장비 다루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한국교통대(당시 충주대)를 졸업한 최씨는 굴삭기 기사 자격증을 따고 26살이 되던 지난 2010년부터 '기사'로 굴삭기 일을 시작했다.

일을 맡기는 업체나 개인과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는 '굴삭기 개인사업자'가 아닌, 중장비 업체 사장과 계약을 맺고 직원으로 채용돼 사장이 지시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기사'가 된 것이다.

굴삭기 기사로서의 일은 고됐다.

최씨와 같은 20대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숙련된 기사들이었고 나이도 많았다. 그만큼 작업량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기사들과 같은 작업장에서 온종일 일을 마치고 나면 작업을 의뢰한 사람들의 비교와 괄시가 이어졌다고 한다.

최씨는 "자격증을 딴 지도 얼마 안 됐고 작업장에 나가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선배 기사들의 작업량을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었다"며 "이를 갈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연습만한 스승이 없다고 생각하고 한 삽 한 삽 진짜 열심히 펐다"고 말했다.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일년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씨의 굴삭기 기술은 늘었지만 월급은 늘지 않았다.

애초에 '월급 100만원'으로 계약한 최씨의 탓도 있지만 고용주는 업무량이 많건 적건 100만원을 고수했다.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 매몰작업에 수 일간 동원돼 계약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 했음에도 월급은 변하지 않았다.

한 달에 많게는 25일 동안 각종 작업에 동원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월급은 100만원.

굴삭기 작업중인 최영진씨가 작업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 성홍규기자
큰 기계를 정밀하게 다루는 일이다보니 크고작은 부상도 많았다.

몇 해 전에는 굴삭기를 운전해 도랑을 건너던 중 경사진 비탈에서 굴삭기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비탈에서 미끄러진 굴삭기는 순식간에 옆으로 누워버렸고 최씨는 그 사고로 왼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고용주는 산업재해와 병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는 다친 다리를 끌고 또다시 굴삭기에 올라 작업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지난해 5월 최씨와 결혼한 이은영(28)씨와 교제중이던 사고 당시, 이씨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고 한다.

최씨는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다. 내 몸이 아픈데다 아내(이씨)까지 입원한 상태인데 월급은 겨우 100만원 뿐이고…. 짧은 삶을 살았지만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며 "퇴근하고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 가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혼자 괜히 훌쩍이기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해 청주에 터를 잡은 최씨 부부는 지난 5월 첫 딸 예원이를 낳았다. 최씨는 아내와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한다.

최영진씨가 굴삭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그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일이지만 예정대로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작업이 마무리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집에서 먼 곳으로 작업을 나갔다 오면 밤중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하루 종일 예원이를 혼자 돌보며 집안 일을 했을 아내에게도 그렇고 아빠 얼굴 보기 힘든 예원이에게도 미안하기만 하다"고 전했다.

최씨는 지난해 8월 대출을 받아 중고 굴삭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난후 곧바로 '영진건설중기(010-4755-4158)' 개인사업자 등록도 했다.

드디어 '월급 100만원' 기사가 아닌 '굴삭기 개인사업자'가 됐다.

최영진씨가 굴삭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성홍규기자
개인사업자가 됐어도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 않단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거리가 많지 않은 게 늘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봄에는 그나마 개인적인 공사나 관급 공사가 간간이 들어오지만 여름엔 장마 때문에 쉬고 가을과 겨울은 '전통적인 비수기'라고 한다.

개인이나 마을 단위에서 의뢰하는 작업은 물론 정부의 SOC감축 기조에 따라 관급 공사도 대폭 줄었다.

일감이 줄어든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작업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수십년생 소나무를 뽑는 작업에 투입됐었다. 소나무 뿌리와 줄기, 가지가 다치지 않게 뽑아내는 작업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조심조심 소나무 수 그루를 뽑아 이동시킬 차량에 옮겨 실었는데, 작업을 마친 후 의뢰주는 "곧 입금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아직까지 입금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대금을 받지 못하면 굴삭기와 굴삭기를 싣고 다니는 트럭의 유류비를 포함한 일당 수십만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최씨가 개인사업자로 일을 시작한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받지 못한 대금만 700여만원이라고 한다.

그는 "작업을 의뢰한 사람들은 굴삭기 작업 중에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옆에서 부탁도 하고 요구도 한다"며 "그런데 작업이 마무리된 후에는 대금을 곧 주겠다는 말만 하고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건설, 건축 경제가 살아나서 일거리가 많아지는 게 모든 굴삭기 기사의 꿈이라면 최씨에게는 작은 목표가 하나 더 있다.

중장비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게 그것이다.

최씨는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긴 하지만 제가 그랬듯이 굴삭기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있다"며 "기술을 가르치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은 직원으로 채용해 정당한 대가를 주면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 성홍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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