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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나는 겨울나무입니다. 잎은 다 떨어져 헐벗은 채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한겨울 바람에 열매와 그늘과 단풍은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남들은 그런 와중에도 새집이나마 있어 훈훈해 보이는데 나는 그야말로 까치집 하나 없이 앙상한 겨울나무입니다. 혹독한 높바람일 때는 얼결에 움츠러들지만 과감히 맞서기도 합니다.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따스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뒤뜰의 야트막한 구릉은 바람모지였습니다. 겨울에는 특별히 추워서 새들조차 집도 짓지 않을 것 같은 곳이죠. 한 자리에 붙박아 있는 내가 어찌 알까마는 먼 하늘이, 짱짱한 여기보다 느긋해 보이는 게 약간은 따스한 느낌입니다. 오늘도 예의 바람이 불고 잔뜩 진을 친 구름이 무척이나 추워 보입니다. 양지바르고 물빠짐이 좋은 자리는 해동이 되면 금방 봄기운이 돌아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데 저 있는 곳은 여전 잔설이 남아 있곤 했으니 한겨울에는 얼마나 추울지 가늠될 거예요.

양달에서도 겨울에는 바람을 피하기 어렵지만 여느 때는 괜찮습니다. 반면 내가 있는 곳은 척박한 땅이라, 가물 때 물이 적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비가 와도 금방 질척해집니다. 해갈은 되지만 끈적이는 기분에 당분간 힘듭니다. 고지대 특유의 윙윙대는 바람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어엿한 나무가 된 후에야 성장의 밑거름인 걸 알았습니다. 삭풍 속에서 겨울을 나야 될 테니 수시로 단련된 게 다행이었죠. 물과 거름이 풍부한 곳은 평소 부러워 해 온 자리였으나 거기서 자란 나무에게는 겨울바람보다 모진 시련은 없을 테니까요.

그들도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기는 했지요. 가뭄과 홍수에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처럼 거친 돌밭에서 겪는 갈증은 모를 거예요. 그들이 날씨가 좋을 때 겪지 못한 어려움을 견딘 덕에 높바람이 그나마 수월했다고 본 것입니다. 비바람을 모르고 눈보라를 견디지 못한다면 재목으로서의 효용가치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례적인 어려움 때문에 단순히 의지만 강하게 된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았거든요.

양지쪽의 나무도 여느 때 생각을 가다듬기는 하겠지만 나처럼, 눈보라와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주어지는 성찰과 사색의 경지는 가당치 않습니다. 외로운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깨우친 거죠. 바람 모지 언덕에서의 시작은 역경이었으나 고통 앞에는 생각이 많아지고 그렇게 터득한 지혜가 겨울을 넘기는 모태라면 감수해야겠지요. 두려운 것은 100%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잎은 떨어지고 전성기는 끝났다고 했지만 눈물로 이겨 온 추위는 봄의 전주곡이었습니다.

나를 보고 헐벗은 채 떨며 지낸다 하겠지만 나름 괜찮습니다. 오랜 날 극복해 온 까닭에 겨울도 두렵지 않습니다. 허구한 날 바람에 시달릴지언정 그래서 겨울나무입니다. 나는 즉 겨울의 터널을 향해 가는 한 그루 나무지만 춥고 어두운 속에서도 마지막 나타날 불빛에 집중하다 보면 지금 이 시점을 웃으며 기억할 때가 오겠지요.

또 바람입니다. 윙윙대는 휘파람 소리는 무척 매서운 바람일 것 같군요. 눈 질끈 감고 허공을 향해 가지를 들었습니다.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이 살을 에는 듯 차가워도 견디렵니다. 겨울의 터널은 춥고 어둡지만 익숙해질 동안 봄이 오곤 했지요. 따스할 때 잉태된 봄이 자칫 무료해진다면 냉기 속에서 형성된 나의 봄이야말로 남달리 뿌듯해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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