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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2.10 17:54:13
  • 최종수정2015.12.10 17:54:13

상당산성 남문에서 바라본 풍경

참 오랜만이다. 성곽 길을 거니는 것이 얼마 만인가. 옛 기억이 무시로 떠오를까, 그리움의 봇물이 터질까 애써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산성을 오르지 않은 지가 어언 이태, 공적인 일로 성곽 길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왜 이리 허전한가.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고 곁을 살핀다.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을 더듬고 있다.

산성은 누구에게나 추억이 많은 장소일 것이다. 나 또한 주말이면 칠순의 아버지를 모시고 성곽 길을 무수히 돌았다. 출장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지못해 이 길을 걸은 적도 있다. 하늘로 돌아간 당신을 떠올리면, 잠시 잠깐 스쳐 간 못된 마음도 죄스럽다. 성곽 둘레를 도는 동안 깊은 대화 없어도 계절이 주는 선물(경치)을 즐긴다. 성곽의 백미인 뱀 꼬리처럼 늘어진 길을 한 시간여 돌고 돌다 미호문(서문)에서 땀을 식힌다. 준비해 온 따스한 차 한 잔의 나눔은 온갖 시름을 녹인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기나긴 성벽과 남문이 보인다.

상당산성은 청주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산성에 오르면 가슴 탁 트이도록 청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걷기에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삼삼오오 산성 둘레 길을 따라 걷는다. 나무와 꽃과 함께할 수 있는 산길을 걸어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처음에 시작했던 한옥마을에 닿는다. 당신과 나는 언제나처럼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고 내려온다. 산성은 이렇게 내 삶의 일부분에 들어와 있다.

산성을 산책코스쯤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무지(無知)의 성(城)을 깨트리는 기회가 있었다. 수년 전 박물관 연구 과정으로 한국 성곽의 이해와 충북의 성곽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운동의 경과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던 적이 떠오른다. 중부내륙 옛 산성군 7개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것이 오래다. 그러나 다년간 기획한 중부내륙 옛 산성을 국내외에 알리려는 사업이 예산삭감으로 일시 중단된 상태라니, 성에 관한 문외한인 나도 발 벗고 나서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

누운 소나무가 산객을 바라보고 있다.

전국에 크고 작은 성터가 2,400여 개에 달한단다. 그중에 산성이 90%가 넘는다니 국가가 아니 선인이 지키고 싶었던 것들이 많다는 걸 바로 보여준다. 성곽은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 더 완전한 형태로, 방어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였으리라. 성에 관한 전략과 전술적 가치는 일찍이 외세침략을 통하여 알고도 남음이 있다. 성의 축조 방법도 시대별로 다르고, 무엇보다 자연 지형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성을 쌓은 지혜가 돋보인다.

산성을 수차례 거닐며 성벽을 바라보는 시선도, 낡은 성문을 넘나드는 일도 새롭다. 성벽에 낀 거무죽죽한 이끼는 오랜 세월을 말하고, 쌓은 돌들은 귀퉁이가 궁굴린 듯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틈새를 작은 돌로 채우거나 정으로 귀퉁이의 홈을 내 연결한 것이 독특하다. 상당산성은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과학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선인의 남다른 축성 기술 덕분이다.

서문(미호문)

성(城)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전이나 고서로 전설이나 민속을 들었으리라.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했다는 통쾌한 이야기나, 한 작가의 소설로 더욱 유명세를 치른 남한산성의 숨은 비화가 그것이다. 공산성 곰 나루터에 얽힌 애틋한 전설은 또 어떠한가. 산성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삶의 문화와 신화는 영원히 이어지리라 본다. 내 삶에 산성에 얽힌 추억이 오롯이 자리하는 것처럼.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운치 있는 성곽길.

내 고장에 현존하는 성곽은 240여 개소에 달한다. 하지만 내 발로 다녀온 산성은 손꼽을 정도다. 상당·삼년·충주·덕주 산성 등이 역사적 가치와 보존상태가 높다고 한다. 그런데 멀리 있는 읍성과 산성은 관광지로, 주변의 산성은 유원지나 쉼터 정도로 여긴다. 성을 쌓다가 힘겨운 노역을 감당할 수 없어 말없이 죽어간 선인들,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켜낸 선열 정신과 숨결은 온데간데없다. 후인은 성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관하여 깊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산성을 다녀왔다고 사진과 간단한 내력, 주변의 먹을거리와 구경거리를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올리는 이는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가.

성곽을 돌아보니 군데군데 보수 중이다. 복원이 문제일 듯싶다. 흙길은 비가 오면 질퍽대며 미끄럽다고 시멘트로 도배하거나, 산의 지형을 고려한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쌓았던 성벽을 규격품의 돌로 쌓아 올린 것은 참으로 아쉽다. 이번엔 서둘지 말고 역사적 사료(史料)를 찾아 제대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대가 변하여 성곽의 역할이 다르다 해도, 성벽을 땜질한 듯 한눈에 드러나도록 쌓는 건 못할 짓이다. 전통문화의 얼을 잇는 후인의 자세가 아니다.

결국, 먼 훗날 우리의 삶이 배인 문화와 산물도 유산으로 남으리라. 부디 무지의 성에 갇혀 풍경만 탐하지 말고 바로 알고 느끼자. 허물어진 성곽에도 선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그들의 문화와 삶의 자취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사료 연구와 보존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상당산성도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문화유적으로 대대손손 보존되길 원한다.

정겨운 다랑이 논이 보인다.

상념에서 벗어나 솔잎 향이 가득한 길로 들어선다. 이 부근에서 숨이 가쁜 아버지를 쉬게 하고자 숨을 헉헉대며 아양을 떨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순간 그리움이 불같이 일어 눈시울이 뜨겁다. 지금 내 곁엔 있어야 할 소중한 사람은 하나 둘 떠나고 그리움만 가슴에 남아 있다. 성곽을 에워싼 울창한 숲도 헐거워져 성벽이 멀리서도 드러나리라. 텅 빈 다랑이논과 앙상한 나무를 바라보니 암연히 수수롭다.

이은희 작가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2013년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김우종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결'

수필선집 '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 '수필세계', '에세이문예' 연재수필 집필 중,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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