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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문방사우 - 중국 황산의 휘주 호개문 묵

딘단하고, 향 좋고…청나라때 호천주가 창시
한국의 '먹' 중국에서는 '묵' 호칭
송나라때 석유·송연 태워 곳곳서 생산
한나라때 급속 발전…"진품은 부르는게 값"

  • 웹출고시간2015.11.25 19:22:41
  • 최종수정2015.11.25 19:22:41
[충북일보] 우리나와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붓(筆) 먹(墨) 종이(紙) 벼루(硯)를 문방사보(文房四寶)라고 불렀다.

중국의 구석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석묵(石墨)과 신석기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검은 염료는 '먹'으로 불리우고 있다.

먹은 나무에서 나오는 검은 가루와 오징어 검은 즙 등은 천연적인 원료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에서 발견된 갑골문을 쓴 먹이 인공으로 제조한 단질 탄소라는 것이 증명돼 중국 먹의 역사는 3천년 이상이 된다고 한다.

#중국 먹의 역사
왕배곤(66.호개문묵공장 회장)씨로부터 중국의 먹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나라는 먹이라고 불리지만 중국에서는 묵으로 불리우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먹은 1975년 후베이 윈멍 쑤이후띠(虎地)에서 발굴된 먹은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먹으로 약 2천200년 전의 유물이다.

이 먹은 송연(松烟) 즉 소나무를 태운 연기를 노루나 고라니, 소의 가죽으로 만든 아교에 반죽한 것이다. 먹의 크기가 작아 벼루에 넣고 절구 공이 같은 돌로 부수거나 갈아서 썼다.

중국의 먹은 송나라때 석유나 유동(오동 나무씨의 기름)태워 먹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됐다고 전한다. 이때까지 먹은 소나무가 많은 지역에서 생산이 됐으나 석유나 유동으로 만든 먹이 개발되면서 중국 곳곳에서 먹이 생산됐다.
중국의 먹은 한 대(漢代)부터 먹의 제조법이 급속히 발전했다.

먹은 제조하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허베이(河北) 이현(易縣)의 묵을 이묵(易墨)이라고 불리웠고, 산시(山西) 노주(路州)에서 생산된 먹을 노묵(路墨), 당나라부터 명나라 때까지는 안휘(安徽)성 휘주(徽州)에서 생산되는 휘묵(徽墨) 등이 있다.
역대로 먹을 만드는 장인 중에 손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삼국시대 (三國時代)의 위탄(韋誕)과 당나라 시대의 조민(祖敏)과 해조(奚朝) 해정규(奚廷珪) 등이 있다.

또 송나라 시대의 장우(張遇)와 반곡(潘谷) 소해 등과 심규(沈珪) 대언형(戴彦衡), 포대소(浦大韶), 섭무실(葉茂實) 등이 있었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는 나소화(羅小華)와 정군방(鄭君房) 방우로(房于魯), 소격지(邵格之) 등이있었고, 청나라 시대(淸代)의 조소공(曹素功), 왕근성(汪近聖), 왕절암(汪節庵), 호개문(胡開文), 정정로(程正路), 정일경(程一卿) 등이 있다.

왕배곤씨는 "중국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새겨 있는 묵의 진품이 있다면 부르는 것이 값"이라며 "혹시 중국에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묵을 구할 경우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잘 새겨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 휘주 호개문 묵

휘주 호개문 묵은 청나라 건륭제30년(기원1765년)에 휘주사람 호천주(胡天注)가 창시한 것이다.

호천주(胡天注)의 본명은 호정(胡正)이고 안휘성 황산시 계서현 상좐현 사람이다.
호천주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황산 휘녕현에 있는 왕기모 묵공장에서 일하다가 왕기모의 딸하고 혼인하게 된다.

건륭21년(1755년)에 휴녕현에 들어가서 왕기모 묵공장을 세우고 건륭30년(1765년)에 둔계현에 왕씨 묵공장을 세우고 자신의 창업을 시작했다.

건륭 47년에 왕가네 묵공장을 물려받고 묵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돈을 많이 들여서 최고의 묵 재료을 구입해서 자신의 부랜드인 새로운 호개문묵을 창시했다.

그때 당시 많은 묵 브랜드를 누르고 묵 세계에서 세계각국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였고 엄청난 이문을 남길 수 있게 됐다.

호개문 묵의 경우 오랫동안 궁중에서 사용하는 어용묵으로 사용이 되기도 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환영을 받는 묵으로 인정 받았다.

호개문에서 만든 지구묵(地球墨)은 1915년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해 중국 최고의 먹 브랜드로 탄생한다.

왕배곤씨가 호개문 묵을 만들고 있다.

왕배곤(66)씨는 현재 호개문묵공장 회장으로 지내고 있다.

그는 1950년 4월 황산시 휴녕현에서 태여 났으며 현재는 중국지묵대사, 안휘성공예미술대사,국가특급공예미술사 등 직을 맏고 있다.

어린시절인 16세에 스승님을 모시고 묵공예에 발을 들여놓은후 47년 동안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 호개문묵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호개문 묵은 매년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지난 2005년도에는 중국최고의 브랜드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도에는 중국최초의 비물질 문화유산에 들었고 2010년도에는 안휘성 100개 브랜드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호개문 묵은 40년동안 중국 최고의 브랜드상을 받아왔다.
휘묵의 특징은 단단하고 광택이 좋고 종이에 묵이 흩어지지 않고, 오랜시간 유지할 수 있고, 향이 강하다.
휘묵의 재질은 송연(松烟) 동유연(桐油烟) 칠연(漆烟)에다가 여러 가지 귀한 약초를 만들어 묵에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왕배곤씨는 "휘주에서 생산되는 호개문 묵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며 "먹이 잘갈리고 향이 좋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학.김태훈기자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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