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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난 가끔 산에 간다. 당일치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 밑에 숙소를 얻어 놓고 3~5일 동안 산을 다닌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에 오른다. 점심쯤 내려와서 밥을 먹고 오후에 또 산에 간다. 대여섯 시쯤 내려오면 몸이 파김치가 되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여자는 물론이고 술, 담배, 커피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좋아진 몸을 등산으로 들볶는다.

몸을 들볶으면 머리에서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이 추려진다. 나는 몸이 피곤할 때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은 과감하게 버린다. 나는 이렇게 몸을 통해서 생각들을 필터링하는 방법을 써본다.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생각들을 버리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몸이 이렇게 피곤한데도 살아남아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곰씹어 보는 편이다.

몸이 피곤한 데도 살아남는 생각들은 평상시의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살다보면 머리는 쉴 틈이 없다. 한 가지 생각만을 골똘히 하기 어렵다. 대학을 들볶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다가도, 갑자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심각한 토론을 하고, 집사람과 애들 문제로 걱정도 하고, 오늘은 누구랑 저녁을 먹을까를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머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과 느낌으로 쉴 틈이 없다.

산에 가서 몸을 들볶다보면 머리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의 가짓수가 줄어들어 생각이 단순해진다. 몸이 정말 피곤한 데도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 감정이 있다면 그것들은 나의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생각이나 느낌들은 내 삶과 생활에 상당히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편이다.

나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이나 느낌은 산에 갈 때마다 다르다. 무언가를 강렬히 욕구하는 탐욕의 마음이 남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집사람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남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꼴도 보기 싫은 놈에 대한 원한이 남기도 한다.

이번에 산에 갔을 때는 몇 년 전 관계가 틀어진 몇 사람에 대한 원한이 솟구쳐 올라 애를 먹었다. 곁에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생생했지만 그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속으로 삭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 감정에 시달리면 내 마음은 괴롭다. 그건 황당한 일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나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분한 마음을 들게 하고 또 그 때문에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건 누구의 잘못인가? 지금 옆에 없는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를 할 수는 없는 법. 지금 옆에 없는 사람이 과거에 행한 일 때문에 내가 지금 괴로워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내 옆에 없고, 그 사람들이 한 일도 과거의 일이다. 그 사람들이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의 원인일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괴로움은 내가 스스로 마음에서 재생산한 원한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 내 괴로움의 책임은 100% 나에게 있다. 떠오르는 느낌을 이런 방식으로 곰씹다 보면 원한이나 분노는 어느새 사라진다.

누구의 마음이 됐든 사람의 마음은 참 오묘하다. 나는 이미 잊고서 다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은 그걸 잊지 않고 불쑥불쑥 생각나게 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아직 치유하지 않고 덮어서 한 쪽 옆으로 치워놓은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을 밖으로 꺼내서 앞에 내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이를 좀 더 일반화시켜 보면 마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너의 마음에 드는 모든 감정이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해소할 거냐?

마음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망각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항상 감정이나 느낌을 정리하고 해소하고 넘어가야 네 마음의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고.

어떻게 정리하고 해소할 것인가· 그건 엄청 어려운 일이다. 마음은 이렇게 항상 우리에게 어렵고도 오묘한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피하고 망각하기 위해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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