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윤기윤 기자의 무비컬렉션 - 선의 베테랑, 악의 얼굴을 강타하다

인간 서사(敍事)의 구도는 곧 권선징악

  • 웹출고시간2015.09.03 18:30:51
  • 최종수정2015.09.03 18:30:51

영화 '베테랑' 포스터

[충북일보] 일본 문학계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항용 재즈 리듬이 흐른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영화에도 박자와 리듬이 있다는 걸 '베테랑'을 보고 알았다. 인간 서사의 가장 근원적이고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뻔한 이야기가 식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선인과 악인이 서로 왈츠를 추는 것과도 같은 경쾌한 균형감각 때문이었다. 여기에 적절한 코미디, 액션 등은 이야기의 표층을 더 바삭하게 구워내 영화를 보는 내내 감칠맛을 더해 주었다.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그렇다. 여기서는 '가오'라고 해야 한다. 순화된 용어는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지극히 상식적 윤리감각을 가진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불의와 담합하려는 동료 형사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가오'는 그에게 형사라는 직무에 부여된 책임감이자 자긍심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명예인 것이다.

그는 범인을 잡는 현장에서도 춤을 추는 푼수기 넘치는 형사이자 집에서는 아내에게 타박받는 평범한 가장이다. 잠든 아들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고 대출 이자 때문에 고민하는 소시민적 모습으로 우리 이웃에 섞여 있을 듯한 연대감을 자아낸다.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가장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인물들을 집합해 놓은 듯한 그런 정의감이나 상식을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가 여론의 대리자인 듯 권력이나 재벌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그가 악질적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과 만나게 되는 것도 그의 선량한 마음씀에서 비롯된다. 평소 알고 지내던 화물트럭 배기사(정웅인)의 어린 아들이 조태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건다. 아버지가 정신을 잃었을 때 아이는 자신에게 용돈을 주던 아저씨를 잊지 않았던 것.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낯선 남자들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참혹함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화장실에서 구구단을 외운다. 합리적 질서의 세계로 이루어진 숫자의 조합과 동시에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지 않은 숫자의 무미함은 그 순간 아이에게 어떤 인간의 말보다도 가장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의 그 무의식적 체득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단언컨대 그 아이도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 아버지나 서도철 형사처럼 성장해서 어떤 분야의 선량한 베테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체액으로 이어진 인간관계와 지폐로 갈라지는 관계의 허술함

사건에 대한 수사로 옥신각신하며 형사 선후배들은 과거 서로의 상처를 내보이는 장면이 있다. 다리나 배에 칼 맞은 상처, 머리의 큰 흉터 등, 그것은 서로를 도와주다 생긴 몸의 훈장이다. 승진 때문에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서도철이 단신으로 현장에 잠입하려 하자 결국 팀을 이끌고 도와주러 가는 오팀장(오달수), 윗선의 압력에 못 이겨 수사 종료를 지시하는 듯 해도 결국 은근슬쩍 수사를 밀어붙이는 서장(천호진) 등 선(善)의 진영은 동료애로 뭉쳐 있다.

서도철의 아내 또한 남편에게 늘 지청구를 주지만 최상무(유해진)의 명품백과 돈다발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녀는 직장까지 찾아와 일견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 하나, '쪽팔리게 살지 말 것'을 선언하며 오히려 서도철의 일에 힘을 실어 준다.

영화 '베테랑' 중 한 장면

반면 적들의 내부는 악으로 똘똘 뭉쳐 견고한 듯 해도 의외로 허술하고 얄팍하다. 오직 지폐로만 채워진 인간관계의 사이사이는 접착력이 없어 이미 미세한 균열이 가 있는 상태다. 오직 돈과 권력이라는 탐욕으로 서로 얽혀 있을 뿐 인간적 애정과 끈끈함이 없으므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함을 안고 있다.

조태오는 무술 단련 중 경호원의 발목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러뜨린다. 최상무는 망나니 조태오를 보필하지 못한 죄로 고모부이자 조태오의 아버지로부터 골프채로 치도곤을 당한다. 따라서 악의 진영에서 정점에 있는 조태오를 빼고 나머지 군상들은 언제든 그 진영에서 이탈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그저 건조한 머리만 쓸 뿐 조태오를 정성스럽게 진정으로 위하는 따스한 가슴이 없다. 그리하여 치밀하게 일을 꾸민다 한들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선의 진영에 있는 인간들이 피와 상처로 서로를 보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청주 성안길에서 맞붙은 밤거리 액션

중고차 밀매단 차량 불법 개조 현장을 덮쳤을 때의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액션이나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에서의 추격전은 호쾌하면서도 웃음이 터진다. 생동감 넘치는 액션에 더해진 코믹 요소는 시종 유쾌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의 서도철과 조태오가 맞붙은 밤거리 액션신은 청주 시민이라면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일 만하다. 익숙한 풍경의 청주 성안길이기 때문이다. 마침 청주의 극장가와 맞붙은 거리라 마치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느낌마저 주었다. 기자간담회 때 배우 황정민은 일주일간 진행된 청주에서의 촬영에 청주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처럼 우리도 '유쾌, 통쾌, 상쾌'한 서도철 형사의 활약상을 이어지는 후속편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베테랑'은 9월10이부터 20일까지 열리는 '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