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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4.14 13:36:30
  • 최종수정2015.04.14 13:36:30
[충북일보]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가들이 "만약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 한다. 그가 재위 24년 동안 보여준 개혁과 대통합 그리고 민본(民本) 정치는 분명히 봉건왕조 조선을 구원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정조의 민본정신은 그가 생전에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백성을 '만천'(萬川)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 위에서 만천을 비추는 명월(明月)로 생각했다.

이처럼 정조는 모든 백성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지고지순한 왕정을 추구했다. 정조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회만 생기면 궁궐 밖으로 행차를 했다. 1백회 이상을 기록한 그의 행차는 백성들의 민원을 집적 현장에서 접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정조는 학문을 좋아했던 호문(好文) 군주답게 《홍재전서》( 弘齋全書)라는 시문집을 184권 100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남겼고, 제 19~25권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이중 제 21권에는 1728년 무신란 때 청주읍성에서 희생된 당시 충청병사 이봉상, 영장 남연년, 비장 홍림 등을 추모하는 글인 '삼충사 치제문'이 들어 있다. 먼저 이봉상에 대한 제문이다.

'옛적 무신년에 난적이 일어나 / 미친개처럼 사납게 설쳤으니 / 누가 충청도 병마절도사였던가 /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이었네 / 숲이 길고 밤이 칠흑 같았는데 / 칼날이 이미 담장 가까이 미쳤네 /…/.'-<홍재전서 제21권, 제문3, 삼충사 치제문>

이봉상과 남연년의 이름이 보인다. 《홍재전서》 권 21 제문.

이봉상은 실제 충무공 이순신의 직손이었고, '숲이 길고 밤이 칠흑 같았는데'라는 표현은 이인좌 반란군이 청주읍성 근처 숲에 숨어있다가 1728년 3월 15일 삼경(밤 11시~1시)에 청주읍성을 공격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정조는 치제문 끝을 '이제 지난 무신년을 거듭 만나니 / 나의 처창한 생각 사무치네 / 향기로운 술과 좋은 안주를 바치니 / 영령은 돌아보아 흠향하길 바라네'라고 읊었다.

정조는 남년연에 대해서는 무인다운 절개는 높이 평가했다. 특히 '적의 도끼', '굳센 풀' 등의 시어는 강렬하게 대비하고 있다.

'누가 두 마음을 품을 것인가 / 가서 적의 도끼에 내 몸을 버렸네 / 거센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굳센 풀을 / 일찍이 성인이 칭찬한 바 있었네 /…/.'- <〃>

정조는 참모 홍림에 대해서는 《영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추념을 했다. 특히 '흉적의 칼날이 사방에서 에워싸' 같은 표현은 감각적인 묘사와 함께 그날 현장의 긴박감이 잘 살아 있다.

'경이 분연히 자칭하기를 / 내가 곧 절도사이니 / 너는 빨리 나를 죽이라고 하면서 / 꾸짖는 말이 입에서 끊이지 않았네 / 흉적의 칼날이 사방에서 에워싸 / 드디어 절도사에게 미치고 / 경도 따라서 죽임을 당하니 / 천지가 이에 노하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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