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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3.03 14:44:57
  • 최종수정2015.03.03 14:44:57

조혁연 대기자

1728년 무신란은 권력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이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해 일으킨 정치적 성격의 반란이다. 청주목 송면(지금의 괴산군 청천면 송면)의 이인좌는 무신란 때 가장 먼저 기병해 국가시설인 청주읍성 감영과 상당산성을 점령했고, 또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다.

따라서 무신란은 이인좌가 주동자가 돼 총괄 기획을 한 것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를 보면 꼭지점의 주동자는 박필현(朴弼顯·1680-1728)이라는 인물로 볼 수 있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인좌는 관군에게 생포된 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신이 봄에 동성 5촌인 이홍부(李弘溥)의 집에 올라왔는데, 이홍부가 풍설에 대해 묻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왜 박필현과 사귀어 남의 말을 듣게 하느냐. 근신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박필현은 재작년 상주로 이사할 때 보아 잘 압니다. 모의는 모두 박필현이 지시했으며…."-<영조실록 4년 3월 26일자>

죄과를 모두 박필현에게 떠넘기는 진술로도 볼 수 있으나, 《영조실록》 4년 3월 19일자에도 '박필현이 비록 읍재(邑宰)로 나가 있지만, 사실상 괴수(魁帥)이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인용문중 읍재는 태인현감을 일컫고 있다. 박필현은 소론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경종이 급서, 권력이 노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경직(중앙관직) 형조좌랑에서 태인현감으로 좌천됐다.

그는 태인현감에 부임하자 포섭한 심유현(沈維賢·당시 담양부사)으로 하여금 화재로 위장해 금성산성의 화약 4천근을 빼돌리는 등 거사를 준비했다.

전주읍성 남문인 풍남문 모습.

3월 21일, 박필현은 "국가변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모두 전주에 있는 전라감영으로 가야 한다. 수기를 흔들면 반드시 의심치 않고 전주성문(사진)을 열어줄 것이니, 전라감영에 합세하여 청주로 근왕하러 올라가야 한다"고 군졸들을 속였다.

그러나 당시 전라도관찰사 정사효(鄭思孝·1665-1730)는 당초 밀약과 달리 서간 수령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박필현은 직접 군졸을 이끌고 청주로 가서 이인좌 반군과 합세하려 했다.

그러나 일부 장교와 군졸들이 따르지 않았고, 따라서 태인현 거병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박필현은 3월 25일 아들 등과 함께 이인좌를 만난 적이 있는 상주의 또 다른 집으로 급히 도피했다.

그는 거동을 수상히 여긴 박동형이라는 인물의 신고로 사로 잡혔다. 박동형은 그 공으로 양무공신 3등에 녹훈되고 또 종2품인 오위장에 발탁된다. 상주진영에 압송된 박필현은 눈을 부릅뜨고 되레 관군을 꾸짖었다.

"너처럼 용렬한 자가 어찌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을 알겠느냐. 근래에 서북풍이 연달아 부니, 하늘의 뜻을 볼 수가 있다. (…) 이미 거병하여 서울을 함락하였을 것인데, 일개 영장의 군사가 어떻게 온 나라의 군사를 당하겠는가."-<영조실록 4년 3월 26일자>

그는 이인좌의 청주읍성 점령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처형 직전까지 무신란의 성공을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상주진에서 처형돼 머리가 깃대에 매달렸고, 처는 교형, 두 아들은 참형, 어머니는 절도(絶島) 유배, 며느리는 관노로 신분이 격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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