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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2.12 16:01:53
  • 최종수정2015.02.12 16:01:53

조혁연대기자

"10일 청주에서 모인 자는 양반이 거의 2백 명이나 되어 하나하나 그 성명을 기억할 수가 없고, (…) 이인좌가 신으로 하여금 가서 영장(남연년 지칭)을 잡아오라 하기에 신이 남문에 앉아서 군사를 보내 붙잡아 오게 해서 신이 붙잡아 가지고 이인좌에게로 갔습니다."

1878년 무신란에 청주사족이 2백여명이나 가담한 것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향촌의 지배층이었던 것은 맞으나 당시 중앙정치 지배세력인 노론계에 속하지는 않았다.

청주지역은 구래로 당색(黨色)이 강한 지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숙종대 3대 환국을 거치면서 지역의 공기도 달라졌다. 노론과 반노론계가 사사건건 충돌하는 향전(鄕戰)이 시작됐다.

충북대 사학과 고수연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1665년(현종 6) 송시열은 청주목 신항서원 위패에 대한 위차을 조정했다. 직전까지 경연, 박훈, 송인수, 이색 등이 배향돼 있었다. 그러나 송시열은 지역 연고가 없는 서인의 영수였던 이이를 주향으로 하고 나머지 8위는 병향했다. 이후 묘정비가 세워지고 1689년 송시열 사후에는 민원진, 권상하 등 골수 노론계 인물이 신항서원 원장직을 맡았다.

그러자 고령신씨, 교하노씨, 진주유씨 등 청주지역 남인들은 1695년(숙종 21) 신천영의 5대조이자 이황의 제자인 신식(申湜)을 신항서원에 제향하여 청주 노론세력을 견제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해 따로 쌍천서원을 설립하고 신식을 독향했다.

이후 청주지역 노론계는 다시 국계서원을 세웠고, 그러자 청주지역 대표적인 남인집단인 고령신씨, 안정나씨 문종은 봉계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응사했다. 이에 또 다른 노론가문인 한산이씨들은 1714년 이색을 제향하여 목은영당은 건립했다.

구례 운조루의 조선후기 <청주읍성도> 모습.

무신란을 주도한 이인좌가 청주읍성을 첫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읍성 무기탈취 외에 △청주가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반노론 세력이 강하며 △한양을 공격하기 좋다는 점을 사전에 전술적으로 고려했다.

조선시대 10대 대로중 충청도를 통과하는 대로는 영남대로(한양-동래)와 해남대로(한양-해남-제주)이다. 이와 관련, 청주-진천-죽산을 경유하면 영남대로에 진입할 수 있다. 반면 청주-진천-소사평(지금의 천안 일부)을 경유하면 해남대로에 진입할 수 있다.

실제 반란군은 청주읍성, 상당상성을 점령한 후 위에서 거론한 루트를 따라 한양으로 진군을 하다 정부 진압군과 접전을 벌있고, 이인좌가 사로잡힌 곳도 죽산이었다.

'죽산 사람 신길만(申吉萬)에게 특별히 동지중추부사를 제수하였다. 신길만을 곧 죽산의 농민인데, 마을 사람 24인과 함께 역괴 이인좌 등을 사로잡아 바친 사람이다. 상으로 은 1천 냥을 지급하고 2품의 관직으로 뛰어 올려 제수하라고 명하니, 대사간 송인명(宋寅明)이 말하기를, "마땅히 역마로 불러 올려서 사람들을 용동시키게 해야 합니다." 하자, 허락하였다.'-<영조실록 4년 4월 26일자>

이밖에 이인좌는 반란이 실패할 경우 백두대간으로 도주하는데 청주읍성이 지리적으로 가장 유리히다고 생각했다. '비록 패하더라도 다시 청주에서 만나 성을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으면 재를 넘어 함께 태백산(太白山)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습니다.'-<영조실록 4년 3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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