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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가을에 왜 꽃이 필까?"

그러게. 가을에 왜 꽃이 필까? 그 좋은 봄날, 팔팔한 여름 다 놔두고 왜 하필 선선한 가을을 골라서 여린 꽃잎을 내밀었니. 앞으로 추울 일만 남았는데! 꽃가루 날라줄 벌이랑 나비도 가 버렸는데! 열매는 언제 맺으려고, 씨는 언제 퍼트리려고! 무엇 때문에 이리 늦게 꽃망울을 보여주는 거니.

겨우내 땅이 저장해 둔 풍부한 양분을 욕심껏 먹고 나무가 해를 가리기 전에 햇빛을 듬뿍 차지한 봄꽃도 있고, 부지런한 곤충과 새들이 이래저래 꽃의 편이 되어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자처해 주는 여름꽃도 있고, 빙자옥질(氷姿玉質), 아치고절(雅致高節)의 찬사를 받으며, 중국의 시인이라는 임포가 여자보다 더 아내로 삼고 싶어 했다는 겨울꽃도 있는데, 가을꽃은 왜 낙엽이 뚝뚝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이 계절에 꽃이 피는 걸까.

길가에 하늘하늘하게 핀 코스모스를 보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을꽃을 닮은 어느 학생이 떠오른다. 발랄한 진달래나 천진난만한 프리지아가 떠오르는 십대의 여느 여학생과는 달리 서정주 시인의 '국화'를 쏙 빼닮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열일곱 살, 나의 학생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는 연이 끊어지고 열 살 터울의 어린 동생과 단 둘이서 학교 근처 작은 방에서 자취를 했던 나의 학생은, 자전거 바구니에 가방이랑 두부랑 콩나물을 섞어 싣고 그 나이에는 많이도 버거웠을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꾹꾹 누르면서도 경쾌하게 페달을 밟고 하교 하곤 했다. 오 분이면 손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천국의 김밥은 싫다고, 엄마가 싸준 김밥 먹고 싶다고 떼쓰는 동생을 위해, 동생의 소풍 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손수 만 김밥을 담임교사 책상 위에도 올려 주던 천사 같은 소녀였다. 이듬해 열여덟 살이 된 나의 학생은 검정고시를 결심하고, 이제는 담임교사도 아니면서 "가지마!" 애써 엄하게 대하는 나에게 "괜찮아요, 선생님!"이라고 말하면서 가을꽃처럼 웃었다.

꽃이 피는 시기는 꽃마다 다르다. 과학자들은 그것이 꽃에게 필요한 햇빛의 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꽃은 긴 낮이 필요한 장일식물이고, 가을꽃은 짧은 낮이 필요한 단일식물이라고 한단다. 사실 단일식물이라는 말에는 햇빛이 적게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아하! 가을꽃이 피려면 어둠이 길게 필요하구나."라는 깨달음에 감탄하고 있다. 가을꽃이 꽃 피우려면 긴 밤이 필요하다. 가을꽃에게는 하루 중 반인 12시간의 어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까. 긴 암흑기를 지난 가을꽃은 다른 꽃보다 더 단단하고, 아무 땅에서나 잘 자란다. 야생화처럼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코스모스나 해바라기, 그리고 들국은 비옥한 땅보다는 오히려 거친 땅에서 줄기가 더 튼튼하고 꽃도 더 잘 핀단다.

몇 년이 지나 코스모스 닮은 그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든든한 지원군도 없이 긴 어둠의 시기를 보냈던 그 학생은 이제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가을꽃도 봄꽃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어쩌면 더 기특하다. 햇빛의 세례를 덜 받았으면서도 이상하게 가을꽃은 햇빛의 색깔을 더 많이 닮았다. 가을의 꽃잎에는 긴 암흑기가 내려준 깊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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