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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제주도 기행 Ⅰ

유채꽃 물결의 향연 제주의 봄날을 뽐내다

  • 웹출고시간2014.04.24 20:35:15
  • 최종수정2014.04.24 20:35:15
시나브로 밝아오는 새벽녘, 창문을 열었더니 파도는 밤새 밀려와 잠든 발밑을 적시고 있었던가 보았다. 지난밤 숙소에 도착해서 바다가 이리 가까운 줄 몰랐다. 하얀 모래사장을 잠이 덜 깬 눈으로 일별하니 순간 눈이 내린 것으로 착각할 뻔 했다.
 

아침 일찍 제주 월평리에서 시작하여 대평 포구에서 마무리되는 올레 8코스를 걷기로 했다. 바닷가 안개에 촉촉해진 잿빛 현무암의 돌담 빛깔이 선연하고, 그 낮은 돌담에 기대어 무리지은 유채꽃이 더욱 화사했다. 노랑의 빛깔이 이토록 가슴에 서늘히 안기어드는 색인 줄 처음 깨달았다. 거무스름한 돌담 옆 유채는 마치 순한 사내의 품에 안겨 있는 아리따운 봄처녀 같이 보였다. 유채꽃 사이사이 연한 보랏빛 꽃무리가 키라도 맞춘 듯 같은 높이에 듬뿍 피어 있었다. 바다로 나가시던 할머니가 무꽃이라고 일러준다. 그 무뚝뚝하게 생긴 무가 이토록 연연하게 아름다운 자태의 꽃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왼쪽 옆구리로 바다는 계속 안기어들고 오른쪽으로는 아직 여리게 자란 파밭과 보리밭이 시리게 펼쳐져 눈길을 잡아끌었다. 여린 파의 향기가 꽃내음 못지않은 줄도 처음 알았다. 밭을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로 들어가니 작고 예쁜 펜션들과 커피숍들이 반긴다. 마을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니 저 멀리 대평 포구와 박수기정의 절경이 보인다.
 

집으로 가는 길, 올레

올레길에 주상절리

주상절리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박수기정을 이곳 주민들은 조순다리라고 부른다. 그 어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박수기정 밑의 바닷가에서 마을 주민들이 낚싯대를 던지고 있다. 바다의 물고기 소식이 궁금하여 바위를 타고 가까이 가니 "여긴 올레코스 아닌데"하며 난색을 표한다. 제주사람들이 처음만큼 올레길 손님을 썩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 실감난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환경을 더럽히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어지럽히고 있나 보다.
 

대평 포구의 난드르 식당에서 보말죽을 먹었다. 난드르는 제주말로 '넓은 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말은 참고메기라고도 하는데 고둥의 일종으로서 우리 충북 지방의 다슬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는 것이 바다의 향기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보말죽 한 그릇을 가벼이 먹었는데도 새로운 기운이 충전된다.
 

올레의 원래 의미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길에 현무암을 쌓은 돌담 골목길을 올레라고 하는데, 그 의미에 걸맞게 풍경은 새롭지만 낯설지 않고 집에 드는 것처럼 올레길은 나그네에게 온전한 휴식을 안겨 준다.

 
삶과 죽음의 평화로운 공존,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

"아 오름에 올라가서 뭣헐라고요?"
 

제주도 토박이인 가이드 총각 말대로 오름은 이름처럼 그야말로 올라가는 것일 뿐이었다. 어쩌면 경주의 왕릉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능이 평지에서 불쑥 솟은 것이라면 오름은 들판에서부터 완만한 능선으로 서서히 높아져 사람의 몸처럼 아름다운 굴곡을 이루고 있었다.
 

오름은 반구 모양의 화산체인데 작은 섬 하나에 이렇게 많은 오름이 있는 경우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제주는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을 갖고 있다. 용눈이오름은 세 개의 능선이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굽이졌다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나무도 하나 없이 땡볕 속을 걸어 올라간 그곳에서 완벽한 평화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그것은 올라본 사람만이 안다. 나무가 없으니 시야가 탁 트이고 사방이 조망되어 그 또한 색다른 맛이다. 발밑으로는 에델바이스처럼 작고 햐얀 야생화의 얼굴들이 사람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다.
 

고향의 뒷동산처럼 편안한 걸음으로 올라 내려다 본 제주의 들녘은 그지없이 순정하고 평화로웠다. 제주하면 우선 바다가 생각나겠지만 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목장들과 너른 들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오름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먼발치로 저 쪽 능선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사람 스스로가 살아 움직이는 나무처럼 보인다.

용눈이 오름의 소들

오름의 정상에 오르니 움푹 파인 분화구의 초지에서 소들이 순한 눈망울로 풀을 뜯고 있다. 어머니 가슴에 안겨 젖을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제주의 이중섭 미술관에서 본 이중섭 그림의 소가 좀 더 살이 붙고 풍만해진 몸피로 살아나와 이 햇빛 속에 한유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멀리 들판의 풍력기와 전봇대가 삶의 현장을 돌리고 있다면, 군데군데 돌담두른 무덤이 삶의 마지막 화인처럼 찍혀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된 평화로움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 제주의 오름이다.
 

자연의 비경과 사람 손길의 절묘한 공조, 비자림

비자림 산책길

중산간지대의 다랑쉬오름과 돛오름 사이에 위치한 비자림은 제 6회 전국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 374호이며 수령 500년에서 800년 된 비자나무가 2800여그루 자생하고 있는, 국내 최대 비자나무 군락지이다. 열매는 한약재나 제사 음식으로 쓰이고 재질이 단단해 바둑판이나 가구로 쓰이기도 한다.
 

산책로 바닥의 붉은 빛과 회갈색 거목에 푸릇푸릇한 이끼, 나무 잎새 사이로 언뜻 비치는 쪽빛 하늘은 그대로 한 폭의 유화다. 비자나무 가지들과 그의 몸피를 감아도는 콩짜개 덩굴의 착생식물 사이로 햇살이 너울처럼 어른거려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랜 시간 수피를 벗고 벗어온 나무들은 어리고도 원숙한 빛이 감돈다. 나무의 숨결, 나무의 역사가 그대로 피부에 감겨드는 듯하다.
 

비자림은 천연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지치기와 지지대 설치 등 인간의 손길이 살며시 녹아들어 있다. 나무마다 일련번호도 매겨져 있다. 그냥 저절로 내버려 두었다면 정글처럼 우거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자연과 사람의 공조가 절묘한 곳이다. 비자나무의 후계목은 양묘장에서 따로 기르고 있다고 한다.
 

숲을 걷자니 어디선가 눈이 소슬히 커다랗게 푸른 숲의 정령이 맨발로 나올 듯 하였다. 저 숲 속으로 한 발짝 내딛으면 일장(一場)의 춘몽(春夢)이 한바탕 혼곤히 펼쳐지고 있는데 붙들려 다시 인간사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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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