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11.20 18:08:4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청주-조치원 사이에 영업용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4년 4월이었다. 그러나 첫 영업자는 내국인이 아닌 일본인 織居加一이었다. 그는 경무부 허가를 받아 매일 2회씩 청주와 조치원 구간에 영업용 승용차를 운행했다.

이후 이 일본인은 재미를 봤는지 '조선자동차운전회사'라는 여객운수회사를 차려 청주를 중심으로 괴산. 미원,진천 등에도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영업용 자동차를 배차했다.

청주-충주간은 처음에는 여객의 왕래가 적어서 승객의 수요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운행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승객이 점차 늘면서 짝수일에 1회씩 정기 운행을 개시했다.

'청주 연혁지'(1923년 출간)를 쓴 오꾸마쇼지라는 일본인은 책에서 청주-조치원 신작로와 함께 주변도 설명했다. 그 내용이 다소 이채롭다.

'고문경찰시대에 조치원 도로가 개수되어 겨우 도로다운 형태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거의 중앙에 해당하는 지점에는 하나의 당우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지역에 덕망이 높은 인격자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당우의 비석은 그 사람의 덕을 칭송하고 있다.'

당우와 당우의 비석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수의동에 위치한 송상현 사당과 신도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조치원을 가리켜 '충북같은 충남'이라고 일컽고 있다. 생활권이 같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장시망도 일조를 했다.

우리나라 제 1호 자동차다. 분명치는 않으나 청주-조치원 구간에도 이런 차가 운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장날은 청주가 2.7일, 오창이 3.8일, 조치원이 4.9일, 부강이 5.10일, 문의가 1.6일이었다. 당시 보부상들이 대장이 서는 청주를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조치원도 포함돼 있다.

하천을 사이로 생활권이 같았던 두 지역은 물싸움도 자주 했다. 그 정도가 심했던지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본조 허만석(許晩石) 정사는 근검을 위주로 하였다. 현 북쪽 15리에 냇물을 막아 큰 방죽을 만들어 천 경(千頃) 남짓한 논에 관개하였는데, 그 방죽이 청주 지경에 있다. 처음 방죽을 쌓을 적에 만석이 몸소 이를 감독하니, 청주 사람 천명 백명이 떼를 지어 와서 불손(不遜)한 말을 하고…'-<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어지는 내용을 '만석이 걸터앉는 호상(胡床)을 꺾어 버리므로 만석이 활을 당겨 쫓으니, 청주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방죽이 이루어지자, 백성들이 그 몽리(蒙利)에 힘입어 지금까지 칭송하고 있다'라고 썼다.

구한말 조치원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것과 반비례해 충주는 쇠잔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부선 철도의 등장이었다. 통감부 시절 일본관리가 도청이 있는 충주에서 서울에 가려면 1주일이 걸렸다. 일본 관료들은 이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또 충주가 충북의 북쪽에 치우쳐 있는 것도 고려됐다.

일본관료는 1908년 충북의 도청을 경부선과 가까운 청주로 기습적으로 이전했다. 오꾸마쇼지는 '청주연혁지'에서 기억에 의존해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적었다.

'1908년 6월 4일 주요 서류를 여행 보따리에 챙겨 질풍노도와도 같이 충주를 떠나 청주로 향하였다. 왜냐하면 그런 중대 문제는 절대로 오랫동안 비밀이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