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2024.05.16 15:19:04

김경순

교통대 커뮤니티센터 글쓰기 강사

오늘도 한 사람이 또 죽었다. 시장 카페에 여인 넷이 모여 앉았다.

"얘기 들었어? 요 앞에 ㅇㅇ집 사장이 자살을 했대!"

말을 하는 여인에게 자세히 듣고 싶어서인지 일제히 그 여인을 향해 어깨를 모은다. 자신이 들려주는 '뉴-스'가 관심을 받자 그 여인은 장황하게 썰을 풀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얼마나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여인들의 표정이 모두 애타는 표정이다. 그 사장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하고 저마다 가끔씩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사연이 참으로 애달프기 그지없다. 그때였다. 여인들의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던 카페 주인장이 큰소리로 외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래요? ㅇㅇ사장님을 오늘 아침에도 만났는데요. 멀쩡히 장사 잘하는 사람이 왜 죽어요?"

카페주인은 자신도 깜짝 놀라 ㅇㅇ사장이 그새 무슨 사단이라도 났나 싶어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고 했다. ㅇㅇ사장은 근동의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그곳으로 출근을 했다는 것이다. 신나게 '뉴-스'를 전하던 여인은 멋쩍은지 얼굴까지 붉어졌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해명을 했지만 무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결혼을 할 무렵이었을 게다. 친정동네도 발도 날개도 없는 말이 쌩쌩 달리기도하고 날아다니기도 했던 일이 왕왕 있었다. 그 말의 진원지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냇가 빨래터였다. 나에 대한 소문도 그 중 하나였다. 시작은 아마도 이러했을 것이다.

"ㅇㅇ네 딸은 요즘 뭐 한댜? 고등학교는 졸업했나? 통 안보이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뼈에 불과 했던 그 말에 살이 붙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뼈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살들이 모여 급기야 괴물을 만들어 놓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다고 했다. 아마도 자식까지 낳았을지도 모를 것이라며 여인들은 남 얘기니 신이 났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빨래터에서 만들어진 괴물은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 무렵 시어머님의 친척이 우리 동네 사람이라 나에 대한 이야기가 시부모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소문이 온 동네를 쏘다니던 어느 장날,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는 장터로 가는 길목의 방앗간 앞에서 심하게 다투셨다. 읍내 여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식 바보였던 친정어머니는 그날 시어머님의 친척집에 찾아 가 딸의 고등학교 졸업장을 집어 던지며 악다구니를 퍼 부우셨다.

근래 들어 읍내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추측성 말들이 오가고 부풀려져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연 많은 죽은 자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처녀를 핫어미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바람과 비마(飛馬)도 이보다 빠르고 시끄럽게 달릴 수는 없을 것이며 귀신도 이보다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이치가 양날의 칼이라지만 그래도 떠도는 풍문이 봄바람처럼 따뜻한 말들로 세상을 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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