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하는데 남녀가 따로 없다

22일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유족 간담회' 개최
유족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오해·무관심 아쉬워"
도내 여성독립운동가 비율 1.9% 불과

2019.08.22 21:10:35

22일 충북미래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유족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독립운동가 흉상제작·전시사업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태훈기자
[충북일보 신민수기자] "할머니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독립운동가가 아니다."

22일 충북미래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유족 간담회' 직후 만난 박천민(여·65)씨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외할머니의 모습을 이 같이 표현했다.

박씨의 외할머니는 충북의 대표적 여성독립운동가인 오건해(1894~1963) 여사다.

독립운동가 신건식 선생의 아내로도 알려진 오 여사는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음식솜씨가 뛰어났던 오 여사는 독립운동가들을 뒷바라지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특히 김구 주석을 보살핀 일화가 유명하다.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 김 주석이 퇴원하자 봉양을 맡았으며, 중국 충칭에서는 김 주석의 모든 숙식을 챙겼다.

또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했고, 한국독립당원으로 활동했다.

독립을 향한 신건식·오건해 부부의 열망은 자식들에게로 이어졌다.

박씨의 어머니이자 오 여사의 딸인 신순호(1922~2009) 여사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광복군이 창립되자 여군으로 입대했다.

신 여사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상했다.

박씨에 따르면 신 여사는 어릴 적부터 임시정부요인들이 모인 집 앞문에서 망을 볼 정도로 독립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어머니인 오건해 여사는 2017년이 돼서야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외할머니는 평소 말이 적고 묵묵히 일했다"며 "이에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오로지 독립만을 위해 여린 몸으로 일제에 맞섰던 여성들은 많았다.

하지만 여성의 독립운동이 보조적 역할 정도로 치부되거나 입증자료가 부족해 이들의 공적이 빛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올해 광복절(15일) 기준 도내 독립유공자 526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1.9%(10명)에 불과했다.

박재복(1919~1998) 여사의 아들 이종재(67)씨도 지금껏 이어져온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에 아쉬움을 표했다.

군시제사 주식회사 대전공장 근로자였던 박 여사는 반일적인 말과 노래를 하고, 무궁화를 수놓는 등 항일의식 고취에 힘썼다.

이로 인해 일제에 붙잡힌 박 여사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그의 공적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씨는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1991년 즈음 보훈처에 탄원서를 냈지만, 무시당했다"며 "어머니는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으셨다. 다만,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실을 살아생전에 알리고 싶어 하셨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006년 박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편, 충북도는 순국선열의 날인 11월 17일 개막을 목표로 '충북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전시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날 도는 간담회를 통해 사업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유족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 신민수기자 0724s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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