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의 역설

2019.06.24 17:19:37

[충북일보] 까마득했던 날을 되돌아본다. 30년도 더 지났다. 그때 잠깐 나는 대학 시간강사였다. 이 대학 저 대학 떠돌며 속칭 '보따리 장사'를 했다. 자부심과 비애를 함께 느낀 시절이었다.

*** 이름만 좋은 법 돼서야

대학 강사들의 비애는 계속되고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간당 강사료가 조금 오른 거 빼곤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개정 강사법이 오는 8월1일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대학과 시간강사들의 입장이 아주 다르다. 대학들은 강사 수를 줄이려 하고 있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시간강사 채용 방식이 대학 측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돈의 셈법'으로만 따지면 강사법은 일단 대학에 손해를 끼친다. 4년제 사립대학에서 이런 셈법이 더 심하다. 전국의 사립대들은 진작부터 시간강사를 줄여 왔다. 그 바람에 지난 7년 동안 시간강사 수는 전국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6만226명에서 3만7천829명으로 줄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의 사립대학 152교(일반 150교, 산업 2교)에 대해 대학알리미 '2011~2018년 전체 교원 대비 전임교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올해 1학기에도 약 2만 명가량 해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2학기를 앞두고 부는 칼바람은 더 거세다. 일단 공개채용 과정에서 또다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선 채용 규모가 이전보다 크게 줄었다.

참 묘하다. 약자를 살리기 위해 마련한 법이 약자를 죽이고 있다. 강사를 위한 강사법이 되레 강사를 해하고 있다. 양날에 독침을 달고 찌르고 있다. 물론 대학들이 강사를 해고하는 이유는 있다. 강사 채용을 기피하는 사정도 있다.

강사법 시행 예산 부담을 피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그저 생존본능에 가까운 대응이다. 선한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악한 행동이시 아니다. 국내 학령인구는 3년 안에 급감한다. 가히 쇼크 수준이다. 강사 축소는 일종의 생존대책이다.

그동안 대학마다 꾸준히 구조조정을 해 왔다. 학령인구 쇼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까닭은 여기 있다. 하지만 대학이 수익성 논리만 강화하는 게 문제다. 별다른 설명 없이 일방적 논리로 관철하려 하는 태도는 더 나쁘다.

강사법은 강사를 위한 법이다. 시간강사가 학교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대학 측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수익성을 훨씬 더 중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강사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

대량해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깃이 됐다. 강사법이 되레 시간강사들을 해치는 꼴이 됐다. 강사법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처우 개선과 신분 보장이다. 대학 측은 처우 개선으로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들어 반발한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신분 보장이 더 부담스럽다. 그동안 시간강사 수요가 넘쳤던 이유는 분명하다. 비용보단 고용이 유연했기 때문이다. 대학은 고민해야 한다. 강사법은 좋은 입법 취지로 만들어졌다. 자칫 이름만 '좋은 법'이 돼선 안 된다.

*** 합리와 실용의 힘 필요

시간강사는 이제 비상근 교직원이다. 여러 대학에서 동시에 교원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일종의 다중교원이다. 촉탁직이 아니라 공개 채용된 선발직이다. 1년 이상 계약에 3년까지 재임용 '절차'가 보장되는 비정규직이다.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강사를 본업으로 여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른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 그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다. 시간강사도 안정적인 연구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강사법이 그런 처우와 환경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들은 이참에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을 되새겨 봐야 한다. 대학이 갖는 여러 특수성과 복잡성을 고려해야 한다. 공존과 혁신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강사법이 되레 시간강사의 봇짐을 더 무겁게 해선 안 된다.

합리와 실용의 힘이 필요하다. 그 가치의 분별력으로 건강한 균형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시간강사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없다'는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있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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