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어의 구수함, 충주 대소원면의 '병자일기'

2016.05.24 15:42:16

조혁연 객원 대기자

《병자일기》는 문신 남이웅(南以雄, 1575∼1648)의 부인 남평조씨가 쓴 일기로, 병자호란 전후의 농촌 현실과 노비들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병자일기》 속의 남평조씨 생활은 대략 난중피란기(1636년 12월 15일~1637년 2월 17일), 서산·당진체류기(1637년 12월 18일~1638년 1월 25일), 충주 이안 체류기(1638년 1월 26일~5월 28일), 서울 귀환기(1638년 5월 29일 이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안은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에 해당한다.

이런 《병자일기》는 국문학적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높다. 《병자일기》는 해서체의 난필에 띄어쓰기가 안 돼 있어 단번에 읽히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수정체를 서서히 움직이면 중세 우리말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김영춘의 <병자일기에 나타난 17세기 국어연구> 논문에 따르면 《병자일기》를 통해 17세기 국어의 단모음화·전설모음화·원순모음화·모음이화·자음동화 등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단모음화는 치음(齒音, ㅅ·ㅈ·ㅊ)의 영향을 받아 ㅑ·ㅕ·ㅠ 등 복모음이 ㅏ·ㅓ·ㅜ 의 단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남평조씨는 충주 체류기간 쓴 일기에서 지금의 '소'[牛]를 '쇼', '소나기'를 '쇠나기', '사랑방'을 '샤랑방', '서방'을 '셔방', '주인'을 '쥬인'으로 적었다.

전설모음화는 치음 아래에서 'ㅡ' 모음이 'ㅣ' 모음으로 현상을 말한다. 남평조씨는 역시 충주 이안 체류 기간에 지금의 '어지럽다'를 '어즈럽다', '우물 치다'를 '우물 츠다', '어질하다'를 '어즐하다'로 기록했다. 이때의 '하'는 아래아(·) 모음이다.

사진: 남평조씨가 병자호란 때 쓴 《병자일기》.

원순모음화의 원순은 입술을 약간 동글게 내밀어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ㅡ'는 'ㅜ'로 발음되는 현상을 보인다. 기존의 연구는 원순모음화 현상이 17세기 말부터 확인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자일기의 특정 단어는 이미 원순모음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남평조씨는 '우믈'(井)을 현태 표기법과 같은 '우물'로 적는 등 이미 이 시기에 원순모음화 현상이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음이화 현상은 한 낱말 안에 같은 혹은 비슷한 음소 둘 이상이 인접해 있을 때 음의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현상을 말한다. 남평조씨의 기록에는 모음이화 이전의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그녀는 지금의 '처음'을 '처엄', '살구'를 아래아의 '살고', '아득하다'를 '어득하다'로 적었다. 이때의 '하'는 모두 아래아 모음이다.

자음동화는 한 음소가 다른 음소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같거나 비슷한 소리로 동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말을 빨리 할 경우 음성기관의 노력을 아끼려는 경제적인 법칙에서 나온 것으로 어문학자들은 보고 있다.

남평조씨는 역시 충주 이안 체류기간에 지금의 '열여섯말'을 '열연말', 아래아의 '잇난'은 '인난', 역시 아래아의 '짓난'은 '진난', '실내'는 '실래'로 기록하였다. 이상의 사례는 남평조씨가 모두 충주 이안에 체류하였을 때 일기문에 적은 것들이다. 3백여년전 우리고장 충주에서는 그렇게 발음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고향이 옛 중원군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무의식중에 '처음'을 '첨으로 발음한다. 중세 충주 언어의 DNA가 남아 있는 까닭일 것이다.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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